과거는 미래보다 힘이 세다

– 새로운 복고, 뉴트로

전자도서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대에도 책은 살아남았다. 전자파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LP는 살아남았다. 과거의 유물이 아직까지 숨 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가진 물성 덕일지도 모르겠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여도,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종이와 LP판의 고유한 물성은 더욱 중시된다. 그것으로부터 전해지는 시각적, 청각적, 거기 더해 후각적, 촉각적 감각은, 감각 너머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것 같았던 옛것들이 모여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에 레트로(retro)로 불렸던, 최근에 뉴트로(new-tro)로 불리고 있는 복고취향이 그것이다. 지난해 ‘2019 트렌드 코리아’에 등장하면서 마치 전에 없던 새로운 조류처럼 떠올랐지만, 사실 뉴트로라는 단어는 2011년 마케팅 용어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뉴트로는 ‘기능 면에서는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디자인에는 복고적 요소와 감성을 고스란히 녹여낸 것’으로 정의되어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단순한 제품 재현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일. 이러한 핵심적 가치는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2019 트렌드 코리아’의 편집자 중 한 명인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복고가 유행할 때는 그것이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맥락에서 과거의 것을 찾지 않는다. 신선하기 때문에 옛것을 찾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는 소비주체에 따른 구분으로, 젊은 층에게 복고는 더 이상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옛것’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레트로와 뉴트로가 무 자르듯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일까? 사실 인류사를 훑어보았을 때, 자신이 경험한 것만 소비했던 (그들의 구분에 따르자면) 레트로 세대는 오히려 돌출된 세대처럼 보인다.

과거를 복기하는 일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복고취향이 가장 유행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10년 전? 20년 전? 아니, 그 어느 시대도 르네상스renaissance가 부흥했던 유럽의 14, 15세기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re 태어남naissance이란 어원에서처럼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를 재현하고자 했고, 이러한 열망은 그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 작품이 지닌 가치를 설명하는 일은 건너뛰어도 좋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인류의 예술사를 통틀어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고 취향은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늘 상존해 있었다. 신고전주의, 네오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이름만 달리할 뿐 과거의 것들을 당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들은 모두 복고의 자장 안에 있는 셈이다.

뮤지컬 이미지(신시컴퍼니 제공)(좌) | 뮤지컬 이미지(킹앤아이컴퍼니 제공)(우)

뮤지컬 <맘마미아!> 이미지(신시컴퍼니 제공)(좌) | 뮤지컬 <올슉업> 이미지(킹앤아이컴퍼니 제공)(우)

그렇다면 지금 여기 공연예술 분야에서 복고취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주크박스뮤지컬 아닐까. 주크박스뮤지컬이란 과거에 인기를 누렸던 대중음악을 엮어 재구성한 뮤지컬을 의미한다. 뮤지컬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까지 제작된 <맘마미아!>는 주크박스뮤지컬을 언급할 때 항상 등장하는 사례다. 그런가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만든 <올슉업>도 있다. 그밖에 최근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다시 조명 받는 그룹 퀸의 뮤지컬 <위윌록유>도 있었다.

국내 창작뮤지컬에서도 주크박스뮤지컬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마지막 로맨티스트 작곡가 이영훈의 음악들로 이뤄진 <광화문연가>와 가객 김광석의 유작들로 구성된 <그날들>과 <디셈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제는 장년이 된 가요계 악동 DJ DOC의 노래로 만들어진 <스트릿 라이프>는 일본까지 진출했다. 이들 주크박스 뮤지컬은 과거의 음악을 단순히 반복하는 게 아니라 서사를 더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모 시대에 유행했던, 정작 자신은 그 시절을 통화하지 못한 자녀 세대마저 아우르는 이른바 뉴트로 뮤지컬 아니겠는가. 곁말을 더하자면, 고전소설에 빚을 진 다수의 대형뮤지컬들도 이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의 한 장면 (킹앤아이컴퍼니 제공)

뮤지컬 <올슉업>의 한 장면 (킹앤아이컴퍼니 제공)

그런데 창·제작자들은 왜 복고에 집착하는 것일까. 사실 검증된 고전을 각색하거나,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대도 컬트 반열에 오른 작품을 재탕하는 일은 창·제작자에게 있어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무엇보다 복고 코드를 삽입하면 지난한 창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 거기 더해 원작에 충성도가 높은 잠재적 관객까지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렇게 과거는 손쉬운 페스티시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계산기를 잘 두드리는 제작자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닌가. 문화상품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재로 눈을 돌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마케팅 용어로 등장한 뉴트로에는 이런 자본가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복고의 가치 자체를 평가절하하기엔 아직 이르다. 복고를 찾는 건, 과거를 향수하는 건 욕망 이전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것들은 감각에 더해 정서를 환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인간은 과거로부터 자신의 존재론적 기반을 찾는 동물이다. 선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인간의 DNA에 각인된 과거는 한 인간의 정체를 형성한다. 이런 과거는 특히 현실이 암울할 때,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왕년의 화려했던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래서 아늑했던 원초적 기억의 장소인 어머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럽의 지성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이 무너진 빈터에 레트로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물론, 지금 과거 향수가 유행하는 까닭이 그런 연유가 아닐 것이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늘 그렇듯, 과거가 미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도서
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역, 『레트로 토피아: 실패한 낙원의 귀환』, 북이십일, 서울, 2018.
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역, 『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작업실유령, 서울, 2014.

CREDIT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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