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산림살림 : 산림생활山林生活, 산림재생山林在生〉

– 문화예술은 산림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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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동의 가치의 근원

중구는 서울의 다른 24개 구와 달리, 옛날부터 서울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청계천을 중심으로 하는 을지로는 가히 ‘서울의 시장’입니다. 그러나 이 시장의 기능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피맛골은 식당거리로서의 기능은 남았을지 몰라도 시간으로 얻어낸 가치는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 산림동 역시 그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전후의 재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공구와 기계, 원자재, 생활을 위한 공산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했고, 그 수요를 채워나간 곳이 지금의 을지로입니다. 그 중에서도 산림동은 을지로 2가에서부터 마장동까지 이어지는 청계천의 여러 ‘시장’들의 ‘공장’이자, 새로운 산업의 생성과 성장을 위한 ‘공방’으로서의 역할을 해 온 곳입니다. 지난 ‘근대화’의 시간 동안, 어떤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와 공구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산림동은 창신동의 봉제공장, 충무로의 인쇄공장과 함께 ‘아직도 생산 기능이 남아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중구에는 43개나 되는 시장이 있지만, 이 시장들에는 이제 유통 기능만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산림동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지점은 단지 그 정취나 역사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산림동은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대학생들의 졸업작품, 공연장의 무대와 소품, 서점과 상점의 인테리어 가구, 전시장의 전시좌대, 미술가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며, 금속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필수적으로 들러야 하는 곳입니다. 산림동은 소비에 기여하는 곳이기 보다 여전히 창조에 기여하고 있는 곳입니다.

산림동의 네 가지 독특함

산림동에는 약200여개의 금속 가공 공장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공장들은 주물, 칠, 시보리, 용접, 정밀, 목형, 빠우, 조각, 프레스 등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신동에서도 비슷한 잘 알 수 없는 공장 이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이 ‘군체’로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품을 주문할 때 그 제품은 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림동 내의 다양한 공장들을 하나하나 들려가며 완성되어갑니다. 산림동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제품’으로 제공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온-디맨드’의 특성은 산림동이 가지는 독특함의 첫 번째 근원입니다.
협력을 통한 생산이라는 첫 번째 독특함을 잘 유지하기 위해 산림동에는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합니다. 이들은 경쟁자이자 동시에 협력자로서 산림동이라는 커다란 ‘군체’를 구성합니다. 상황과 때에 따라 서로 다른 업체들끼리 만나 제작을 함께 하는 일이 많은 곳이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다른 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강력한 협력관계가 산림동의 두 번째 독특함입니다.
산림동에는 언제나 아직 세상에 없거나, 살 수 없는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다보니 산림동에서 오랜 시간 공장을 유지해온 기술자들은 이런 ‘새로운 요구’에 단련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기술은 궁리하고 생각하고 연구해 온, 단순한 매뉴얼이나 기술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경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을 ‘암묵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암묵적 지식을 산림동이 가진 세 번째 독특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의 독특함은 ‘집단적 성공의 경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암묵적 지식은 성공의 경험으로 사람과 공간에 고착됩니다. 산림동에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내는 데 일조한 수많은 전문가들이 아직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합리적으로 일과 결과물을 생각하며, 그 기준에서 ‘안 될 일’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경험적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기회비용을 보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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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은 산림동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 산림동은 몇 년 내에 사라질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위기’라고 쓰지 않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는 이미 오래되었으나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은 바로 옆 입정동에 포크레인과 노란색 가림막이 등장하고, 공장들이 헐리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우리는 산림동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4차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도시의 재생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 4차 산업을 받쳐내고 있는지, 무엇을 재생해야 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별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산림동에 필요한 것은 예쁜 벽화나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런 ‘예술적’활동들은 현재 산림동의 구조적 붕괴를 가속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산림동에서 일하고 있는 기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고, 그 역할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이해의 방법입니다. 앞으로, 문화와 예술이 산림동에 해야 할 일, 산림동에서 배워야 할 일을 네 가지 목표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목표 – 산림동에 뜨내기들이 다시 모여들게 할 것 :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그래서 4차 산업의 핵심인 개인화, 온-디맨드 산업의 기지로 산림동이 다시 기능하게 할 것, 이를 위하여 산림동에 제작의 욕구를 가진 개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놓을 것. 이 목표는 <산림살림 : 머티리얼랩 – 산림동의 재료들>을 지속적으로, 확장성 있게 구성하여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전문적인 상담과 지원, 산림동의 공장들과의 연계 방안 등이 구조적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목표 – 산림동의 암묵적 지식을 계승할 방법을 찾을 것 : 산림동의 전문가분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 기술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기술들은 그들의 자부심이자 삶의 방법이기도 했고, 사라진다면 다시 얻기 위해 많은 기회비용이 투여되어야 하는 것들이지요. 이 기술들을 전수하기 위해 젊은 세대와의 연결점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층에 대한 취업지원 사업의 연계 모델로서 산림동의 기술을 전수받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목표 – 산림동에서 생산하여 판매하는 경험을 만들 것 : 산림동의 공방의 기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시장 자체의 경향이 ‘상품’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산림동 또한 적응하고, 대응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소비 구조와 산림동 사이에서 산림동의 ‘제품’을 시장의 ‘상품’으로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는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메이커스 프로젝트’들과 결을 같이하는 사업이 될 것입니다.

네 번째 목표 – 산림동의 전환의 경험을 보존, 승계할 것 : 서울특별시 중구 산림동의 경험은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사라져 갈 수 있는 많은 다른 ‘생산 구역’들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산림동의 변화 과정을 잘 정리하고, 그 근원에 있는 요인의 핵심들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생산중심지들이 변화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들을 확보해나가는 일 또한, 산림동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CREDIT

글. 충무아트센터 문화사업팀 (PM 김상윤, 유혜림 / 내용연구소)

사진. POP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