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공연계 결산 –
미투 운동 강타, 블랙리스트 후유증 속에서 내실을 다지다

2018년도 공연계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상반기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공연계 역시 잇따라 폭로된 성폭력 스캔들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또한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사태는 책임자 처벌 문제를 놓고 공연계에 후유증을 남겼다. 이러한 외부적인 혼란과 충격으로 공연계의 성장은 완만했지만 뮤지컬계는 창작뮤지컬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연극계는 자신만의 언어와 형식을 추구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 공연계 강타한 미투 운동과 젠더 감수성의 변화 

남성 배역을 여성배우로 캐스팅해 화제가 된 연극 (극단 신작로 제공)

남성 배역을 여성배우로 캐스팅해 화제가 된 연극 <비평가> (극단 신작로 제공)

한국에서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촉발됐지만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킨 것은 공연계였다. 배우 이명행을 시작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성추행 폭로가 터져 나왔다.

특히 국내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인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의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연출가 김수희의 폭로를 시작으로 10여명의 전 여성 단원들이 이윤택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 등 성폭력을 당한 것이 드러났다.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됐고, 이윤택은 구속돼 지난 9월 징역 6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미투 운동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가운데 처음으로 실형이 선고된 사례였다. 다만 재판에서 “연기 지도”였다며 혐의를 부인한 이윤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윤택 외에 연극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 국내 대표적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 영화·연극·드라마를 오가며 연기력을 뽐냈던 배우 조재현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배우 조민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또다시 충격을 안겨 줬다.

미투 운동은 초기엔 가해자들을 징벌하는 차원이었다면 점차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공연계에서는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품이 수정되거나, 남성 배역을 여성 배역으로 바꾸거나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 프리 또는 젠더 벤딩 캐스팅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지나치다는 논란이 있던 알돈자 윤간 장면이 미투 운동을 계기로 수위가 낮춰졌다. 또한 뮤지컬 <광화문연가> <더 데빌> <록키호러쇼>가 하나의 배역에 혼성 캐스팅을 하는가 하면 연극 <비평가>는 원래 남성 배역이었던 것을 여성 배우로 캐스팅을 해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 페미니즘 연극제, 퀴어 연극제가 개최되는 등 연극계에서 젠더, 성소수자,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해졌다.

◇블랙리스트 후유증 속에 돋보인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

블랙리스트 사태는 공연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전반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 사태 해결의 첫 단계로서 민관 합동으로 진상조사 및 제도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리고 11개월간의 조사 끝에 지난 6월 블랙리스트 관여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131명에 관한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문체부가 3개월이나 지난 뒤 소속 공무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고, 연극계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계는 ‘셀프 면책’이라고 비판하며 1인 시위 등으로 항의해왔다. 결국 여론의 역풍을 받은 문체부는 두 달 만에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에 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직원을 엄중 징계해 대조를 이뤘다.

연극계는 올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가 마무리되지 못한데다 미투 운동으로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 때문에 연극계 전반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연극계의 구조적인 불합리성과 부도덕함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김재엽 이경성 전인철 윤한솔 이연주 김수희 등 진보적인 젊은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 검열, 성차별, 분단 등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다. 지난해까지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작품에 드러냈다면 올해는 성찰을 통해 한층 내면화 시키는 한편 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돋보였다. 남산예술센터, 삼일로창고극장, 두산아트센터 그리고 국립극단의 ‘연출의 판’은 젊은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한편 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 세종문화회관이 개관 40주년을 맞은 해였다. 하지만 기념비적인 해에 두 극장은 위상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52시간 근무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흐름 속에 공공 극장의 운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웰메이드 창작뮤지컬 봇물 속 아시아 시장 진출 활기

올해 최고의 화제작 창작뮤지컬

올해 최고의 화제작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국내 공연 시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의 점유율이 여전히 높지만 최근 창작 뮤지컬로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소극장은 이미 창작뮤지컬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시장 영향력이 큰 대극장에서도 <프랑켄슈타인> <마타하리> <광화문연가> 등 성공적인 대형 창작 뮤지컬이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웃는 남자>였다. EMK가 제작한 이 작품은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 국내와 자주 작업하는 해외 스태프들이 참여하고 박효신 정성화 수호 등 스타 배우들이 참여했다. 4개월간 143회 공연하며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웃는 남자>는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올해는 창작 뮤지컬의 아시아 진출이 활기를 띤 해다. 중국의 경우 2016년 사드 여파로 주춤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회복한 모습이다. 특히 제작사 라이브의 성과가 두드러지는데, 라이선스 공연으로 <마이 버킷 리스트>와 <랭보>를 선보였다. 한국 hj 컬쳐의 <라흐마니노프>도 2년 연속 라이선스 버전으로 공연됐다. 또한 대만에서도 라이브의 <팬레터>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왕세자 실종사건>이 한국 버전으로 선보였다.

일본에서도 한국 뮤지컬의 진출이 꾸준이 이어졌다. EMK의 <마타하리>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라이선스로 선보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 도호 원작을 EMK가 개정한 버전이다. 두 대형 뮤지컬은 일본 주류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소극장 뮤지컬은 라이선스 버전과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투어 공연으로 나눌 수 있다. 1편당 4일 정도인 투어 공연은 신스웨이브가 주도했는데, <어쩌면 해피엔딩> <인터뷰> <광염소나타> <아이러브유> <알타보이즈> 등 5편이 일본 관객과 만났다. 라이선스 버전으로는 <마이 버킷 리스트> <김종욱 찾기>가 공연됐다.

뮤지컬 / 뮤지컬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한편 국내에서 라이선스 뮤지컬 가운데 주목되는 현상은 가족 뮤지컬의 선전이다. 국내 공연 시장이 20~30대 여성 중심으로 형성되다보니 그동안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등 해외에서 흥행했던 가족 뮤지컬이 국내에선 잇따라 쓴 맛을 봤었다. 하지만 최근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라이온 킹> 등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 뮤지컬이 잇따라 흥행하면서 시장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REDIT

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