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이름도 없이 존재감을 내뿜는 ‘에쿠우스’들을 만나다

– 연극 에쿠우스〉 코러스 7인 인터뷰

이명규, 현익창, 조형일, 김선진, 이동훈(이 연), 배은규, 신동찬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명규, 현익창, 조형일, 김선진, 이동훈(이 연), 배은규, 신동찬 (왼쪽부터 순서대로)

대사도 없지만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무대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연극 ‘에쿠우스’에서 말을 연기하는 코러스 배우들은 주연 배우 못지 않게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무대에 데뷔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대와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는 7인의 코러스 배우들을 만났다. 배은규, 조형일, 이동훈(이 연), 신동찬, 이명규, 현익창, 김선진 배우다.

-‘에쿠우스’의 코러스는 대사가 아닌 몸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말처럼 보이기 위한 몸짓을 연습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이명규 안무 외우는 게 힘들었어요. 안무를 잘 살려야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데, 안무를 외우고 박자 맞추고, 진짜 말이 되기까지의 기간이 힘들었죠.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이동훈(이 연) 저는 춤이라기보다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어요. 대사가 아닌 움직임으로 표현한다고요. 그래서 춤이랑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현익창 이전에는 안면근육을 주로 사용했는데 가면을 쓰고 몸이 얼굴이 되니까 전혀 새로운 개념이더라고요.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신체의 모든 부분을 얼굴이라고 상상하며 연기했어요.

연극 〈에쿠우스〉 공연사진 (극단 실험극장 제공)

연극 〈에쿠우스〉 공연사진 (극단 실험극장 제공)

-무대 위에서 말 가면을 쓰죠. 얼굴을 가리고 무대에 선다는 점이 배우로선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동훈(이 연) 얼굴은 가렸지만 눈은 보이잖아요. 배우는 눈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아쉽지 않았어요.

김선진 저도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나 동물이나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에쿠우스’의 말은 정말 신적인 존재잖아요. 제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혀 아쉽지 않아요.

조형일 극 안에 녹아 들수록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욱 동물적으로 표현하게 되고요. 그래도 커튼콜 때 가면을 벗는 그 순간을 가장 기다리고 있죠.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 어떤 것도 연기할 수 있다는 대답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네요. 여러분이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배은규 저는 작년에 데뷔했어요. 30살에 연기를 시작했거든요. 원래는 회사를 다녔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배우로 전향했어요. 지쳐 보이는 회사 선배의 모습이 제 미래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시작이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여유도 느끼고 있어요.

이명규 TV에 나오는 유명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생각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연극에 대한 꿈이 ‘에쿠우스’를 하면서 좀 더 구체화되고 있어요. 내년쯤 뉴욕에 나가서 본격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현익창 어릴 때 소년합창단을 했어요. 그만큼 노래를 좋아했죠. 충무아트센터의 뮤지컬전문아카데미에서 보컬 수업을 들었는데 제 인생의 스승인 양주인 음악감독님도 만나게 됐어요. 그 후로 계속 오디션을 보고 작품을 하고 있고요.

신동찬 전 사실 배우 박보영씨에게 반해서 연극 전공을 하게 됐는데요. 직접 연기를 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에쿠우스’는 제 데뷔작품이에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이에요. 자유로우면서도 남자들끼리 끈끈함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김선진 고등학생 때 친구가 연기학원에서 공연을 하는 걸 보고 저도 연기학원에 등록했어요. 무대 위에 선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조형일 고등학생 때 연기학원을 우연히 들렀다가 사람들이 울고 웃고 화내고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 때까지 해봤던 것 중에 연기가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오히려 도전의식이 생겨서 잘 해내고 싶고요.

이동훈(이 연) 영화 ‘바람’에서 배우 정우의 연기를 보고 ‘이거다’ 싶어 영화과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영화연출을 하다가 연극을 보고는 완전 빠졌어요. 그래서 배우뿐만 아니라 글도 쓰고 제작도 해보고 싶어요.

-배우에 입문한 계기도 정말 제각각 이네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도 다를 것 같아요.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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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찬 만화책을 1000권 넘게 봤을 정도로 판타지적인 걸 좋아해요. 최근에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을 보면서 동물과 교류하는 마법사에 대한 로망이 생겼어요. 연극이든 스크린이든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연기로 경험해보고 싶어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영화든 모든 장르에서 쓰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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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익창 연기로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의 직업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의사라는 직업은 꼭 연기해보고 싶어요. 저도 영화, 연극, 뮤지컬 모두 경험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리 내고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무대라고 생각을 할 거예요. 짐 캐리의 자유분방한 연기를 좋아해요. 그런 영향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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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규 저는 일부러 자신을 망가뜨리고 촌스럽게 보이게 하는 배우가 좋아요. 자기 자신을 버리는 배우요. 차승원 배우를 정말 좋아해요. 생각해보니까 멋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망가지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도 ‘선생 김봉두’의 김봉두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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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일 20년 후에는 ‘에쿠우스’의 다이사트 박사 의자에 앉아보고 싶어요. 저는 어떤 다이사트를 표현할지, 그 때 ‘에쿠우스’에서는 어떤 말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해요. 연기 자체가 좋아서 시작했기 때문에 연극, 방송 기회가 된다면 다 해보고 싶어요. 아쉽게도 제가 음치라 뮤지컬은 하고 싶어도 못할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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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이 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할을 죽기 전엔 꼭 해보고 싶어요. 가장 빠져들어 봤던 인물이었어요. 연기가 정말 인간답다, 연기가 아닌 진실 같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유재명 배우처럼요. 제 최종 꿈은 대형컴퍼니 대표예요. 에든버러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어요. 여러 작품을 제작하고, 제가 주연도 맡는 그런 큰 꿈을 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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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진 저는 전쟁영화를 좋아해요. 전쟁영화야 말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영화 ‘퓨리’에서 브래드 피트가 정말 좋은 배우라고 느꼈어요. 전장에서 느끼는 극한의 공포를 잘 표현했거든요. 제 꿈은 헐리우드 전쟁 영화에 나오는 거예요. 요즘 총맞는 연기도 연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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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나이가 더 들고 성숙한 배우가 됐을 때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역사의 아픈 현실을 알리고 동시에 저의 말과 움직임이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단순히 상업적인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이 확고한 송강호 배우를 좋아해요. 최종 목표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 보는 거예요. 인형극이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는 다원극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작품을 만들어서 해외 극단과도 교류해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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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지닌 색채는 모두 달랐지만 연기와 연극에 대한 열정은 하나로 모아졌다. 앞으로 이들을 눈 여겨 보자. 머지 않아 이들이 없는 무대는 상상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CREDIT

글. 양진하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