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의 정서와 끈끈한 가족애 담긴 ‘김치검보’

음식으로 맛본 영화 –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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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딸의 SNS를 추적하는 아빠의 모습 그려
시대상 나타내는 장치로 흥미 자극하는 독특한 형식의 스릴러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딸의 SNS 등을 추적하는 아빠의 모습을 절절하게 풀어낸 영화 ‘서치’는 독특한 형식의 스릴러로,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랜선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 영화는 시대상을 잘 나타내는 장치로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인도계 미국인인 아니시 차간티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이 등장하고, 주요 출연진도 모두 실제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화에는 딸을 찾는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에는 딸을 찾는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경찰과 함께 딸을 찾아보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자 아빠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경찰과 함께 딸을 찾아보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자 아빠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병으로 세상 떠난 엄마 그리워하며 아빠와 소통 피하는 딸
그런 딸에게 다가가지 못하다가 그의 외로움을 알게 된 아빠

아내 파멜라(사라 손)와 딸 마고(미셸 리)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데이비드(존 조)는 파멜라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마고를 정성껏 돌본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마고는 차츰 말 수가 줄어들고, 아빠와의 소통도 피한다. 데이비드는 그런 딸이 걱정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답답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며 친구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고 전한 마고가 한밤중에 아빠에게 전화 3통을 연이어 걸지만 잠이 든 데이비드는 받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데이비드는 마고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호숫가에서 마고의 흔적을 찾지만 마고는 행방이 묘연하다. 답답한 마음에 마고의 노트북을 켠 데이비드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뒤지며 자신이 알지 못하던 마고의 생소한 모습을 접하고 당혹감에 빠진다. 딸이 느끼고 있는 엄마 잃은 외로움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간절한 마음으로 딸을 찾아 나선다.

초반에 세 가족이 함께 지내던 화목한 모습을 다양한 영상으로 보여준 후 스릴러 구조를 갖춰 빠르게 전개된다. 스크린을 PC 모니터 화면으로 꽉 채워 영상통화와 문자메시지, 뉴스 장면 등을 보여주며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딸에 대한 아빠의 감정도 문자메시지에 내용을 썼다가 지우는 정도로 드러난다. 마고에게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문자를 보낸 데이비드는 ‘엄마도 그럴 거야’라고 썼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지우고 만다.

단란했던 시절 엄마와 딸이 김치검보를 만드는 동영상을 보는 아빠의 마음이 미어진다.

단란했던 시절 엄마와 딸이 김치검보를 만드는 동영상을 보는 아빠의 마음이 미어진다.

PC 화면이 이어지는 영화에서 가족애 확인시키는 김치검보
만들어 먹어 보니 그들이 느낀 끈끈한 정이 어렴풋이 다가와

데이비드 가족의 삶을 따라가며 재료를 구해 그들이 먹었을 법한 김치검보를 만들었다.

데이비드 가족의 삶을 따라가며 재료를 구해 그들이 먹었을 법한 김치검보를 만들었다.

다소 삭막하게 다가오는 영화에서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시키는 장치로 음식이 활용된다. 바로 ‘김치검보’다. 검보(Gumbo)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공식 음식으로, 육류나 해산물을 각종 채소와 함께 끓여 먹는 일종의 스튜다. 영화 앞부분에 데이비드가 동생 피터(조지프 리)와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이 음식이 처음 등장한다. 피터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자 데이비드가 “뭘 만드냐”고 묻는다. 피터는 “김치, 오크라, 홍합스튜인가? 팸(파멜라)이 만들던 건데. 뭐가 더 들어가지?”라고 되묻고 데이비드는 “김치검보”라고 답하며 PC에서 레시피를 찾아 “완두콩도 넣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파멜라가 어린 마고와 김치검보를 만드는 동영상을 보며 슬픔에 잠긴다. 김치검보는 마고가 죽은 엄마를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다. 또 데이비드도 이 음식 레시피를 읽으며 아내와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차간티 감독은 왜 한국계 미국인 가정을 선택했고, 김치검보를 넣었을까. 그는 당초 존 조를 주연으로 정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계 미국인 가정이 등장하고, 데이비드의 직업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정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쓰도록 만들었다. 김치검보는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검보는 흑인 노예들이 즐겨 먹던 음식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정체성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검보의 주재료는 오크라로, 이 채소는 아프리카 동북부가 원산지다. 이 음식이 프랑스 스튜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루이지애나는 과거 프랑스령으로 지금도 프랑스계 이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보는 프랑스 요리에 사용되는 루(roux)를 기반으로 만든다. 버터에 밀가루를 넣고 볶아서 만드는 루는 국물의 점성을 높여 걸쭉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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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리브오일과 버터에 밀가루를 볶아 갈색이 나는 ‘블론드 루’를 만든다.
2. 루에 닭 육수를 넣고 끓인다.
3. 소시지와 샐러리, 양파, 김치를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4. 토마토와 완두콩을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5. 오크라를 넣고 점성이 생길 때까지 5분 정도 끓인다.
6. 홍합을 넣은 후 타바스코와 레드와인을 살짝 첨가하고 소금, 후추로 간해 파로 감칠맛을 낸다.

데이비드와 피터가 나눈 대화와 도마, 그릇 등에 양파와 샐러리가 놓여있는 영상을 참고해 데이비드 가족이 즐겨 먹었을 법한 김치검보를 만들었다. 우선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올리브유와 버터를 두르고, 동량의 밀가루를 체에 쳐서 넣어 볶았다. 루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검보에는 갈색이 날 때까지 볶는 ‘블론드 루’를 사용한다. 루가 완성되면 여기에 닭 육수를 부어 끓인다. 직접 닭 육수를 내기 힘들면 시중에서 파는 치킨스톡을 이용한다. 데이비드 가족이 한국계이지만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감안해 약간 묵은 김치를 물에 씻어 고춧가루를 제거한 채 넣었다. 검보에 흔히 들어가는 소시지와 양파, 샐러리, 김치 등을 볶다가 양파가 투명해지면 육수를 붓고 끓인다. 적당히 끓으면 토마토와 완두콩을 넣고 한 번 더 끓여준다. 이 음식은 충분히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 이후 오크라를 넣고 점성이 생길 때까지 약 5분간 더 끓인다. 마지막으로 홍합을 넣고 입을 벌릴 때까지 끓인 후 타바스코로 매운 맛을 내고, 레드와인도 살짝 넣어준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파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후 인터넷에 김치검보 레시피가 여러 개 올라와 있다. 그중 고추장을 넣고 만든 게 많은데 아무래도 데이비드 집에는 고추장이 비치돼 있지 않을 것 같아 타바스코로 대체했다. 그랬더니 깔끔한 매운 맛이 났다.

완성된 김치검보를 밥에 얹어 먹어보니 데이비드 가족이 느꼈을 가족애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걸쭉한 국물이 왠지 낯설면서도 정감 어린 맛이었다. 부대찌개 같으면서도 조금 더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동서양의 맛을 합한 듯한 이 음식에 한국계 미국인의 정서도 녹아있는 듯하다.

이 음식을 먹으며 데이비드 집에 초대받은 상상을 하게 됐고, 그와 함께 마고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CREDIT

글 | 사진.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