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반전의 맛 미나리김밥, 동심의 감정선 건드리는 오이김밥

음식으로 맛본 영화 – 김영탁 감독의 ‘헬로우 고스트’,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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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담긴 김밥,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장치로 활용돼

소풍날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먹으며 설레던 기억 소환

음식에는 추억이 깃든다. 대표적인 추억의 음식으로 김밥을 꼽을 수 있다. 김밥에 담긴 추억은 ‘가족’이다. 어린 시절 소풍 전 날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 꽁다리를 먹으며 설레던 기억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소중한 추억이다.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김밥의 추억은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장치로 활용됐다. 그중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김밥으로 강렬한 반전의 맛을 선사한 ‘헬로우 고스트’(감독 김영탁·2010년)와 아이들의 우정과 갈등을 다룬 ‘우리들’(감독 윤가은·20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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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유머와 진한 감동을 자연스럽게 버무린 코미디물 ‘헬로우 고스트’ (사진제공 NEW)

외로운 남자가 귀신을 보게 되는 코미디물 헬로우 고스트

미나리김밥 한방으로 뜨거운 감동 전하며 객석 눈물바다

김밥은 김 위에 밥을 펴놓고 고기, 채소 등 다양한 소를 얹어 둘둘 말아 싸서 먹는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속 재료는 다진 소고기를 볶은 것과 달걀부침, 시금치, 오이, 당근, 우엉, 어묵, 게맛살 등이다. 집집마다 넣는 속 재료가 조금씩 다르며 대표 속 재료로 김밥의 이름을 붙인다.

‘헬로우 고스트’에 등장하는 김밥은 ‘미나리김밥’이다. 이 영화는 죽는 게 소원인 외로운 남자 상만(차태현)이 죽음에 실패한 후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코미디물이다. 상만은 수면제를 먹어보고, 차 안에 연탄을 피워 가스를 마셔보고, 강에도 뛰어들었지만 매번 죽음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어느 날 응급실에서 깨어난 상만의 눈에 네 명의 귀신이 보이고, 이들은 상만의 몸에 달라붙어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보챈다. 상만은 귀신들을 보내기 위해 구형 카메라를 찾아주고(이문수), 포니 택시를 타고 달리며(고창석), ‘로봇태권V’를 함께 보기도 한다(천보근). 마지막 귀신(장영남)의 소원은 아들을 위해 장을 봐서 식탁을 차리는 것. 귀신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 상만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지막 귀신이 싸준 김밥을 들고, 첫눈에 반한 간호사 연수(강예원)를 찾아갔다가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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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김밥은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강렬한 반전 장치로 활용된다.

미나리김밥은 이 영화가 지닌 ‘한방’이다. 상만이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장면이 병렬식으로 나열돼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미나리 김밥이 상황을 반전시키며 객석이 눈물바다가 된다. 강예원이 김밥을 먹으며 차태현에게 “보통은 김밥에 시금치를 넣잖아요. 근데 상만 씨는 미나리를 넣었네요”라고 질문하자 차태현은 “아 그거요. 우리 엄마가 피에 좋다고 늘 시금치 대신 미나리를 넣었거든요”라고 답하며 얼굴이 일그러지고, 이내 눈물을 쏟으며 달리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10분이 앞서 101분 동안 펼쳐진 내용을 뒤집으며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하게 만든다.

질지 않게 지은 밥에 참기름·소금·통깨로 밑간을 해 김 위에 고르게 펴고, 간장으로 간한 다진 소고기 볶음을 넓게 펴 얹은 후 단무지, 당근, 달걀부침과 살짝 데쳐 참기름과 소금 넣고 무친 미나리를 올려 둘둘 말면 미나리김밥이 완성된다.

입안에 넣고 씹으니 미나리 향이 퍼지며 나머지 재료들이 조화롭게 맛을 낸다. 미나리 향은 특정 기억을 각인시킬 정도로 강렬하다. 영화를 떠올리며 미나리 김밥을 먹으니 작품의 맛이 극대화된다. 상만이 김밥을 씹으며 떠올린 순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전이되며 그처럼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음식으로 영화를 맛보며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감정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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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아이들이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우리들’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아이들의 우정과 미움, 질투 등을 섬세하게 펼친 우리들

아련한 엄마의 사랑 떠오르게 하는 아삭한 식감의 오이김밥

 어린 연기자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우리들’에는 ‘오이김밥’이 나온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잘 버텨내던 초등학교 4학년 선(최수인)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전학 온 지아(설혜인)와 가까워지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 선은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자신의 집에서 지아와 일주일간 함께 지내게 된다. 함께 누운 잠자리에서 지아는 선에게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털어놓는다. 선은 분식집을 하는 엄마에게 “지아가 좋아하는 오이김밥을 싸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엄마가 오이김밥을 만들어놓지 않자 선은 엄마를 조른다.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준 지아와 더욱 친한 사이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지아는 선이 엄마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후 오이김밥을 먹지 않는다. 그 후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선은 다시 혼자가 되지만 의식을 치르듯 들인 봉숭아물이 지아의 손톱에 남아있는 것을 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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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김밥은 아삭한 식감으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우정과 미움, 질투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오이김밥은 아이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주요 장치로 사용된다. 하지만 선이 엄마가 만든 오이김밥만 나올 뿐 지아가 원했던 김밥의 실체는 보여주지 않는다. 지아는 함께 바다에 가기로 했던 엄마가 일이 바빠 못 온다는 전화를 받은 후 오이김밥을 떠올렸다. 궁금해졌다. 어떤 김밥이길래 이 아이의 기억에 선명하게 박혀있을까.

지아가 선이 집에 와서 오이김밥을 만들어달라고 한 건, 선이 엄마가 선이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지아 부모는 지아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했고, 지아는 친할머니와 살고 있다.

이런 영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지아의 기억을 설명해줄 수 있는 설정을 추가했다. 지아 엄마는 이혼을 앞두고 지아의 소풍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밥을 만들어줬다. 지아는 그 김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의 정을 느낀다.

지아 엄마는 한 번도 김밥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딸에게 김밥을 만들어주려고 인터넷을 뒤진다. ‘김밥만들기’로 검색하니 달걀부침, 단무지, 오이, 햄, 게맛살 등을 넣은 가장 일반적인 김밥 레시피가 나온다. 집 앞 편의점에 갔더니 게맛살과 오이, 그리고 단무지, 우엉, 당근이 담긴 ‘김밥 3종세트’가 있다. ‘오이는 씨를 제거하고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빼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달걀부침도 네모로 말기 힘들다. 그래서 오이는 채칼로 썰고, 달걀은 넓게 부쳐 칼국수처럼 만들었다.

지아 엄마가 만들었을 법한 오이김밥을 그대로 말았다. 꽁다리를 씹으며 식감을 음미해보니 지아가 오이김밥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삭한 오이채 식감이 입안을 개운하게 하며 달걀 채가 푹신한 느낌을 전한다. 나머지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맛의 균형도 좋다.

지아는 엄마가 처음 싸준 김밥에 대한 기억을 오이채가 씹히는 소리와 각 재료들의 식감으로 기억하고 있는 거다. 지아의 오이김밥을 먹으며 불쑥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김밥은 그런 음식이다. 막연한 기억을 자신만의 구체적인 추억으로 그려주는 음식이다.

CREDIT

글 | 사진.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