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성원이 되는 의식 ‘스키야키’, 소박한 사랑 이어주는 ‘소면’

음식으로 맛본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영화를 위해 작곡, 편곡, 선곡된 ‘영화음악’은 장면 분위기를 살리고, 캐릭터의 정서를 표현하며 극의 맛을 살려준다. 거의 모든 영화에 OST(Original Soundtrack)가 삽입된다. 영화보다 OST가 더 큰 인기를 모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가 음식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SF 등 장르를 불문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음식이 나온다. 별 의미 없이 밥 먹는 장면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이 극을 이끄는 주요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음식남녀’ ‘라따뚜이’ ‘심야식당’ ‘아메리칸 셰프’ ‘카모메 식당’ ‘리틀 포레스트’ 등 아예 음식을 주제로 내세운 영화도 있다. 특히 가족드라마에서 음식이 부각 된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도 한다.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함께 나눈 음식이 추억으로 쌓이고, 그 추억의 힘으로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 게 가족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기재로 사용되며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주는 음식은 가히 ‘영화음식’이라고 할만하다.

실타래처럼 얽혀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이들이 음식을 나누며 쌓아온 행복한 추억이 이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묶어놓는다. (티캐스트 제공)

실타래처럼 얽혀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이들이 음식을 나누며 쌓아온 행복한 추억이 이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묶어놓는다. (티캐스트 제공)

영화 속 인물 관계와 이야기의 흐름 잡아주는 ‘영화음식’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서사, 음식이 주요 장치로 사용돼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풀어내는 가족 서사에서 음식은 주요 장치로 사용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에서도 다양한 음식으로 캐릭터 간 관계를 설명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영화는 일본 도쿄의 쓰러져가는 목조주택에서 집주인인 하츠에 할머니(기키 기린)와 이런저런 사연으로 엮여 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의 원제는 ‘만비키 가족’으로 ‘만비키’(万引き)는 ‘좀도둑질’을 뜻한다. 이 가족의 주 수입원은 하츠에 할머니가 받는 연금이며 생필품은 동네 마트에서 훔쳐온다. 아버지 격인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공사장 일용직으로, 아들로 생각하는 쇼타(조 카이리)에게 “진열대에 놓인 물건은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직원에게 들키지 않고, 물건 훔치는 법을 가르친다. 엄마 격인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세탁소에 나가고, 노부요의 동생 역할을 하는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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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와 쇼타는 원하는 물건을 별 탈 없이 훔치면 단골 고로케 가게로 간다. 진짜 아버지가 되고 싶은 오사무는 쇼타에게 고로케를 컵라면 뚜껑에 올려 데운 후 라면 국물에 적셔 먹으면 맛있다고 가르친다. 고로케는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들을 부자 관계로 엮어주는 장치다. 이들은 다정하게 고로케를 먹으며 걷던 중 아파트 1층 발코니에 혼자 앉아 있던 유리(사사키 미유)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유리를 부모에게 데려다주려고 하지만 유리의 집 앞에서 부모가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다시 집으로 데려와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스키야키에 여러 형태의 가족이 가능하다는 생각 녹인듯
만들어 먹어보니 그들이 느꼈을 ‘가난한 행복감’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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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이들 가족과 함께 불에 얹은 냄비에 둘러앉아 스키야키를 먹으며 구성원이 되는 ‘의식’을 치른다. 고레에다 감독은 스키야키에 여러 형태의 가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녹여 넣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키야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식이다. 대부분의 집에 묵직한 나무뚜껑이 멋스러운 스키야키용 무쇠 냄비가 하나씩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영화에는 가족이 모여 스키야키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한국의 불고기와 유사한 스키야키는 ‘단짠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소기름을 두른 냄비에 얇게 썬 소고기를 익히다가 설탕을 뿌리고, 간장과 청주를 부은 후 버섯, 두부, 파, 배추, 실곤약, 쑥갓 등을 넣고 조리듯이 끓이는 간사이(關西)식과 전골처럼 국물에 고기와 채소를 끓여 건져 먹는 간토(關東)식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스키야키는 간토식이다. 고기는 보이지 않고, 배추와 실곤약만 둥둥 떠 있다. 고기를 찾으려고 냄비를 휘젓던 쇼타가 “배추밖에 없잖아”라고 중얼거리자 노부요는 “배추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고기 냄새도 잘 배어 있고”라고 말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 공개 후 내놓은 소설 ‘좀도둑 가족’에는 스키야키에 대한 묘사가 영화보다 자세히 나온다. 노부요가 돼지고기를 사와 스키야키에 넣었다고 쓰여 있다. 오사무가 오면 주려고 조금 남겨 놓은 고기를 넣는 대목도 나온다.

고기를 조금 넣어 소스에 볶다가 배추와 실곤약을 추가해 끓인 스키야키

고기를 조금 넣어 소스에 볶다가 배추와
실곤약을 추가해 끓인 스키야키

이 가족이 먹은 스키야키를 경험하기 위해 고기를 조금 넣어 볶다가 간장에 가쓰오부시, 다시마, 청주,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소스를 붓고 배추와 실곤약을 추가해 끓였다. 처음에는 간사이식으로 먹다가, 다시마 물을 부어 간토식으로 만들었다. 구운 두부와 버섯 등이 들어가면 더 맛있지만 배추와 실곤약만 먹어도 충분했다. 조금 넣은 고기를 다 먹은 후 배추와 실곤약에 집중하니 그들이 느꼈을 ‘가난한 행복감’이 어렴풋이 다가왔다. 하츠에 할머니는 스키야키 국물에 밀개떡을 익혀 유리의 입에 넣어준다. 유리는 밀개떡으로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떠올리며 이들 가족에게 마음을 연다.

소면으로 정상적인 부부생활 영위 못하는 한 풀어주려해
오랜만에 하나가 된 부부의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는 음식

(좌) “여름엔 역시 소면이지”라고 말하며 오사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부요 | (우) 영화 장면을 참고해 만든 소면

(좌) “여름엔 역시 소면이지”라고 말하며 오사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부요 | (우) 영화 장면을 참고해 만든 소면

노부요와 오사무는 술집 종업원과 손님의 관계로 처음 만나 비극적인 일을 함께 겪으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키가 두 사람이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며 오사무에게 “노부요 언니하고 언제 해?”라고 묻자 오사무는 “우리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소설에는 이 부부가 섹스를 하지 않는 상황이 설명돼 있다. 오사무는 고등학생 시절 수치스러운 기억이 남아 있어 여자를 멀리하고, 노부요는 전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탓에 남자가 지겹다. 이런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고 몸을 섞는 장면에 소면이 등장한다. “여름엔 역시 소면이지”라고 말하며 속옷 차림으로 얼음물에 담긴 소면을 건져 먹던 노부요가 갑자기 오사무에게 키스를 하고, 이내 오사무의 몸 위로 올라간다. 카메라가 상위에 쏟아진 국수 그릇을 비추며 오랜만에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드러낸다.

국수는 부부의 연이 길게 이어지는 것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을 ‘국수 먹는 날’로 표현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오사무와 노부요의 한을 소면으로 풀어주려 한 것 같다. 소면을 먹는 장면에서 탁자 위에 3배 농축 쯔유 병이 놓여 있는 것을 참고해 소면을 삶아 얼음물에 담근 후 찬물에 쯔유를 타서 파를 잔뜩 넣은 국물에 찍어 먹어봤다. 쫄깃한 국수에 달달하고 짭짤한 쯔유 맛이 어우러지고, 알싸한 파가 씹히며 오사무와 노부요의 소박한 사랑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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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며 담담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쇼타가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히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들이 살아온 행태가 세상에 알려지고, 실타래처럼 얽혀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이들이 음식을 나누며 쌓아온 행복한 추억이 이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묶어놓는다.

CREDIT

글 | 사진.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