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의 살롱문화와 살롱음악회

클래식 음악 공연을 대중들이 함께 보게 된 건 바로크 시대라고 보면 되지만 지체가 높은 귀족들과 일반 청중이 함께 본 건 고전주의 시대부터 시작, 부르조아가 발달한 낭만주의 시대라고 보면 된다. 이런 대규모 공연장과는 달리 살롱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오늘 날까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연주자와 후원자 그리고 팬이 직접 만나게 되는 전통의 장소가 된 것이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럽 곳곳의 귀족들의 살롱에서 음악회를 연주하며 천재 칭호를 받았다. 베토벤도 독일 본에서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빈으로 온 뒤 빈의 귀족들인 발트슈타인, 리히놉스키, 라주몹스키 등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귀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들의 살롱에서 걸출하고 시대를 앞서나가는 아방가르드한 음악들을 발표했다.

리투아니아의 영주 라지비우(Radziwill) 집에서 연주 중인 쇼팽, 1887.

리투아니아의 영주 라지비우(Radziwill) 집에서 연주 중인 쇼팽, 1887.

살롱이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어에서 나온 것처럼 살롱음악회하면 역시 프랑스 파리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각기 헝가리와 폴란드라는 동구 출신의 20대 초반의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스트와 쇼팽은 프랑스의 살롱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면서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요제프 단하우저, 〈리스트의 아침〉(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니콜로 파가니니, 조아키노 로시니, 프란츠리스트, 마리 다구 백작부인, 피아노 위에 리스트가 존경하는 베토벤의 흉상) 1840. 베를린, 국립 미술관.

요제프 단하우저, 〈리스트의 아침〉(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니콜로 파가니니, 조아키노 로시니, 프란츠리스트, 마리 다구 백작부인, 피아노 위에 리스트가 존경하는 베토벤의 흉상) 1840. 베를린, 국립 미술관.

특히 쇼팽이 당대의 여성 문필가, 저널리스트,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던 조르주 상드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함께 하게 된 살롱음악회에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함께 쇼팽과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음악, 문학, 회화 등을 논했다. 러시아에서 온 문필가 이반 투르게녜프, 화가 들라크루아,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등이 이들과 함께 살롱문화를 이뤘다. 리스트와 쇼팽은 당대 파리 사교계의 총아들이었고 수퍼스타들이었다. 이국적인 동구권 출신의 두 남자의 너무나 화성적으로도 새롭고 아름다운 터치와 시적인 멜로디와 다채로운 음색, 깊은 감수성에 파리의 여인들은 완전히 녹아버렸다.

(좌)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 (우) 프란츠 리스트

(좌) 프레데릭 프랑수아 쇼팽 | (우) 프란츠 리스트

쇼팽은 특히 살롱음악회를 통해 많은 여성 제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든 여인은 남성적이었으며 여성해방을 부르짖었던 문필가이자 소설가 조르주 상드였다. 한편 금발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쇼팽과는 반대로 건장한 체구를 갖고 있었던 리스트는 대단한 플레이보이로 파리 여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가장 큰 연애 사건은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자유연애였다. 파리에서 스캔들을 일으킨 두 사람은 쇼팽과 상드의 노앙 저택의 살롱에도 손님으로 함께 참여했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스위스와 이탈리아 장기 여행을 떠나는, 당시로서는 세상의 평판에 맞서는 모험적인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결국 여행 도중에 싸우게 되어 긴 연인관계를 끝맺게 되기도 했다.

쇼팽과 슈만에게 젊은 시절부터 인정받았던 브람스도 살롱음악회와 인연이 깊다. 오랫동안 작곡에 매달려서 한 작품에 퇴고와 수정을 거듭한 브람스는 초연 전에 꼭 악보를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클라라에게 보내건 직접 보여주건 간에 일종의 검사를 마쳤다. 클라라가 피아노로 쳐보고 좋다고 하면 그제서야 브람스는 연주를 하기로 결심하고 비공개 초연은 대부분 클라라와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하곤 했다. 이런 음악동료들, 친구들과의 일종의 테스트를 마쳐야 완벽주의자인 브람스는 안심하고 신작을 대중들 앞에 발표하곤 했던 것이다.

슈베르티아데. 율리우스 슈미트, 1897

슈베르티아데. 율리우스 슈미트, 1897

사실 작곡가들 작품의 비공식 초연은 살롱음악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베토벤은 주로 후원 귀족들의 살롱에서, 슈베르트는 친구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를 통해서 이뤄졌다. 슈베르티아데는 가장 이상적인 살롱음악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악가 시인, 문필가, 화가, 음악가 그리고 음악애호가가 모두 모여 새로 창작한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으며 또 신작 피아노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면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 토론을 했으니 작곡가 슈베르트는 또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새로운 방향과 길과 사조를 모색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슈베르티아데를 떠올리면서 함께 모여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했던 음악 감상실인 르네상스나 필하모니 같은 고전음악감상실도 모두 이런 살롱문화에 대한 뜻과 열의를 갖고 만든 공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천재가 빛났던 멘델스존은 아버지가 마련한 저택에서 열린 일요일 살롱콘서트에서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곡과 실내악 곡을 작곡했고 누나 파니와 함께 박수를 받으며 직업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창수가 수년째 이끌고 있는 하우스 콘서트는 서울의 서교동의 어떤 집에서 하던 것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심지어 하루에 여러 도시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서도 이 취지에 동참해 아르코 강당에서 이 하우스 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원래 유럽의 살롱콘서트가 아는 사람들끼리의 일종의 예술적인 사교모임이었다면 이제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해 서로를 알아가고 친구가 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연주를 듣는 새로운 컨셉의 살롱콘서트가 형성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같은 유명 피아니스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외국의 유명 연주자들도 이 하우스 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서 다양한 장르의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즐길 수 있는 콘서트 시리즈가 되었다.

충무아트센터의 예그린살롱음악회도 이런 살롱음악회의 전통을 되살려보고자 한 콘서트다. 몇 달 전 베이스 함석헌과 함께 이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아침 11시에 모여 아담한 공간에서 음악예술을 감상하고 논하고 예술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자리가 무척 소중했다. 10년 전 쯤 핀란드의 숲속 오두막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를 즐겁게 감상한 적이 있었다. 실내악 연주가 끝나니 댄스파티까지 열렸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탱고 인구가 많다고 자랑하는 핀란드다웠다.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다양한 살롱음악회가 보다 많이 열려 이 노래와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피부로 가깝게 체험했으면 한다.

 

CREDIT

. 장일범
음악평론가, 팟캐스트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