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 〈위대한 쇼맨〉 리뷰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형형색색 서커스 단원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중심에 우뚝 선 주인공 P. T. 바넘(휴 잭맨)의 춤과 노래는 내 눈과 귀를 대번에 사로잡고 말았다. 처음부터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느낌이랄까. 첫 곡 제목 ‘The Greatest Show’처럼 쇼는 위대했다. 나는 그렇게 영화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출처: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출처: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휴 잭맨의 성인 바넘이 어린 바넘과 오버랩되면서 장면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가난한 양복장이 아들로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보낸 어린 시절로의 플래시백이다. 하지만 어린 바넘에겐 꿈이 있었다. 사랑도 있었다. 소년은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작은 등불로 멋진 그림자 쇼를 펼친다. 쇼맨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청년이 된 바넘은 사랑하는 여인 채러티(미셸 윌리엄스)와 결혼하고 뉴욕으로 간다. 낡은 아파트에 소박한 보금자리를 꾸민 둘.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옥상에 올라 널어놓은 흰 빨래 사이를 헤집으며 춤추는 장면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귀여운 두 딸을 낳고, 옥상에서 두 딸에게 환상적인 그림자 쇼를 보여주는 장면은 어린 바넘이 지녔던 재능과 꿈이 여전함을 상징한다.

회사에서 해고된 바넘은 은행에서 1만 달러를 빌려 ‘호기심 박물관’을 개관한다. 기린, 코끼리 같은 이국적 동물들의 밀납모형을 전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지 않았고, 쫄딱 망할 위기에 처한다. 딸이 말한다. “박물관에 죽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살아있는 것도 필요해요. 선풍적인 걸로요. 인형 말고 인어나 유니콘 같은 거.” 바넘의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게 있었다.

바넘은 은행에서 봤던 어느 청년을 찾아간다. 22살이지만 꼬마처럼 작은 키의 그 청년은 집에 없는 듯 숨어 지내고 있었다. 바넘은 자신의 쇼에 출연할 것을 제의하지만, 청년은 고개를 젓는다. “이왕 조롱당할 거 돈 받고 당하는 게 낫지. 칼과 총을 차고 쇼를 할 거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그들이 와서 조롱하는 대신 그대에게 경의를 표할 걸세.” 청년은 수락한다.

특이한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모여든 이들은 하나같이 희한했다. 수염난 여성, 문신인간, 몸무게 227㎏의 거구, 남들보다 키가 두 배 가까이 되는 거인…. 어둠 속에 숨어 지내던 이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와 모여들 때 흐르는 노래 ‘Come Alive’를 듣는 순간 나도 그들과 함께 되살아나는 듯 짜릿함을 느꼈다.

이들의 쇼는 큰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쇼를 못마땅하게 본 공연평론가는 신문에 “사기꾼이 펼치는 서커스”라는 혹평을 싣는다. 바넘은 오히려 이를 홍보에 활용한다. ‘서커스’라는 표현을 공식 명칭으로 쓰고, 혹평 기사를 주요 신문에 실은 뒤 이를 오려 오면 50% 깎아주는 전략을 쓴다. 바넘은 상류층 사교계를 주름잡던 칼라일(잭 에프론)까지 운영자로 영입해 승승장구한다.

바넘이 칼라일에게 같이 일하자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2인무가 특히 인상적이다. 술병과 술잔, 바의 의자를 활용한 두 남자의 춤에선 힘과 박력이 느껴진다. 영화 후반부에서 칼라일은 좋아하는 여인 앤 휠러(젠다야 콜맨)와 사랑의 2인무를 펼친다. 공중곡예사인 앤 휠러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칼라일과 ‘밀당’을 하다 끝내 하나로 포개진다. 그간의 갈등을 녹이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은 또 하나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Zendaya and Zac Efron star in Twentieth Century Fox's "The Greatest Showman."

출처: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마냥 좋은 날만 이어지진 않는 법이다. 혐오 세력들은 “괴물은 물러가라”며 연일 반대 시위를 펼친다. 바넘은 유럽에서 섭외해온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공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단원들이 각성하며 전면에 나서는 대목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난 이제 남의 시선은 두렵지 않아. 이게 나야. 당당히 살 거야. 우리는 멋진 존재야.” 이들이 부르는 노래 ‘This Is Me’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이 노래는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았다.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바넘은 큰 위기에 처한다. 제니 린드의 전국 투어에 문제가 생겨 중단되면서 투자금을 날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서커스 극장마저 불타고 만다. 하지만 그의 곁엔 단원들이 있었다. “박수갈채에 눈멀지 않고 뭐가 가장 중요한지 깨닫게” 된 바넘은 단원들과 함께 다시 일어나 쇼를 펼친다. 엔딩 장면은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쇼’다.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화려하고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한 번만 들어도 귀에 꽂히는 음악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걸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에서 직접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도 했다.

출처: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출처: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사실 <위대한 쇼맨>은 영화로 만들어지기 이전에 먼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1980년 초연한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은 서커스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 쇼 뮤지컬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했고, 오리지널 런던 프로덕션은 로렌스 올리비에상 남자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꿈이 이뤄지게 생겼다.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이 8월 7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국 초연을 한다. 뮤지컬은 영화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지상 최대의 쇼를 맞이할 기대감에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댄다.

CREDIT

.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