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던 청춘의 욕망 – 존 트라볼타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까지, 전설의 춤꾼들을 만나보자

영화와 춤의 만남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95년에 첫 선을 보인 영화는 시작부터 더 많은 관객들을 필요로 했고 자연스럽게 ‘선배’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때 영화와 찰떡궁합을 자랑한 예술 장르 중 하나가 바로 춤이었다. 19세기 말, 에디슨이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란 이름으로 발표했던 영화들을 보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했던 에디슨이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춤이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즉 오래전부터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춤을 보고 싶어 했고, 이는 1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영화와 춤의 친밀한 관계는 1920년대 유성 영화의 발명 이후 더 가속화되었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30년대 이후에는 영화에도 뮤지컬이라는 독립적인 장르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사랑하는 스타가 탄생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뮤지컬 영화의 1세대 스타라고 할 수 있는 프레드 아스테어(1899~1987)나 진저 로저스(1911~1995), 그리고 두 사람보다 조금 늦게 데뷔했지만 인기는 뒤지지 않았던 진 켈리(1912~1996)는 영화나 뮤지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1930~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타고난 매력과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춤과 음악, 그리고 패션까지 대중문화의 유행을 선도하였다.

이 1세대 뮤지컬 스타들은 물론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각자 갖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흥겨운 춤과 노래로 표현했으며, 가장 슬픈 순간을 연기할 때도 희망이 다시 찾아올 거라 믿었다. 오랜 시간 관객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이들의 변함없는 춤과 연기를 보며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고, 이 스타들은 영원불멸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좌 )’풋루즈’ 의 케빈 베이컨, (우상단) ‘플래시 댄스’의 제니퍼 빌스 (우하단) ‘더티 댄싱’의 패트릭 스웨이지

그런데 이 글에서 이야기 할 80년대의 뮤지컬 영화, 혹은 ‘댄스 영화’들은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결과 맥락을 갖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대와 불화했으며 기성세대들을 향한 반항심을 숨기지 않았다. 성적 욕망은 물론 물질적, 사회적 성공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으며, 그 과정에서 쉽게 우울해하거나 쉽게 화를 냈다. 이들은 불안정했고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또는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으며 즉시 이들을 새로운 청춘의 아이콘으로 삼았다. 대표적으로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스, <풋루즈>의 케빈 베이컨, <더티 댄싱>의 패트릭 스웨이지는 모두 80년대 청춘의 욕망을 생생하게 드러낸 대표적 아이콘이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특히 청춘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적 캐릭터로 자리를 잡았을까.

어디서나 당당한 모습 – <플래시댄스>

‘섹시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에이드리안 라인 감독의 1983년 작 <플래시댄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알렉스를 연기한 제니퍼 빌스의 존재 그 자체이다. 낮에는 남자들 틈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댄서로 활동하는 그녀는 그 설정만으로도 새로운 시대의 도착을 알렸다. 특히 그녀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며 쾌감을 주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도 당당한 태도로 주도권을 쥐었으며, 화가 날 때는 어디서든 명쾌한 말과 행동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드문 타입의 여성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서사적 설정보다 알렉스의 캐릭터를 더 잘 설명해주는 건 바로 그녀가 추는 춤이었다. 춤을 더 잘 추기 위해 유명 학교에서 무용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알렉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교육을 받지 않는다. 그녀는 TV나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춤을 보며 그걸 자신만의 독창적 스타일로 소화했고, 이를 (조금은 성인 취향의) 클럽에서 선보이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춤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도 그녀의 춤 스타일이 자유분방하고 독특하다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도 그녀의 과감한 춤에 보수적 관객들이 거부감을 표하는 장면이 들어 있을 정도다. 그녀는 디스코와 스트릿 댄스, 그리고 발레의 동작이 함께 섞인 안무를 소화했으며, 하나의 곡 안에서도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해진 지배적 질서를 깨트린다는 묵직한 뉘앙스까지 내비쳤다. 

특히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들에 지금도 영감을 주고 있는 마지막 시퀀스의 댄스 심사 장면은 근엄한 표정의 나이든 심사위원들과 알렉스의 열정적인 춤이 맞물려 그 자체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기존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굳이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학교가 아니라 거리의 자유로운 댄서로 계속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의문도 들지만 심사장을 나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제니퍼 빌스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어디서든 지금처럼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 역시 동시에 든다. 

춤에 몰입한 청춘들의 진지한 표정 – <풋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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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스가 뉴욕을 배경으로 자유로운 신세대의 통통 튀는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면 케빈 베이컨이 출연한 1984년 작 <풋루즈>는 미국 남부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춤 자체가 금지된, 극도로 보수적인 공동체를 그린다. 다른 도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사 온 렌은 모범생이다. 그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용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도 성실히 일한다. 술은 즐겨 마시지만 마약은 철저히 거부하고 섹스에도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 마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는 단 한 가지, 바로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언뜻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지만 감독은 마을의 지도자인 목사의 개인적 사정과 남부 시골 마을의 전반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그리며 의외로 큰 설득력을 불어 넣는다. 이제 렌의 목표는 분명해진다. 어떻게든 이 마을에 십대들의 댄스파티를 개최하는 것이다. 즉, 부모와 목사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들과 싸워 지금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바로 이곳에서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싸움의 과정에서 어떤 관객들은 약간 실망할지도 모른다(나 역시 실망한 관객 중 한 명이었다). 뭔가 본격적인 반항과 싸움의 과정을 기대했지만 렌은 그 싸움 역시 지극히 착한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춤이 무해하다고 어른들에게 친절이 설명하고 제도적 장치를 어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심지어 성경 구절을 춤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건전 댄스파티’를 개최한다. 거침없는 청춘들이 펼치는 광란과 무질서의 카니발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조금 김이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서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결국 춤 그 자체이다. 이 영화를 거칠게 서사 파트와 댄스 파트로 나누었을 때, 서사 파트는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되지만 댄스 파트가 등장할 때는 마치 다른 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분위기가 확 바뀐다. 렌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정말 세상에 춤 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열심히 춤을 춘다. 동작이 그렇게 세련되지도 않고 기계 체조 동작이 섞인 춤은 조금 촌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들은 춤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해 구슬땀을 흘린다. 과감히 말하자면 <풋루즈>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서 몰래 섹스를 하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게 아무 것도 없던 청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이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자랑하는 것, 그때의 즐겁고 진지한 눈빛만으로 이들은 자신이 이미 기성세대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계급적 질서를 뛰어넘는 라틴 댄스의 매력 – <더티 댄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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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춘 스타 패트릭 스웨이지(1952~2009)가 마성의 매력을 자랑했던 <더티 댄싱>은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조금은 보수적인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귀하게 자란 예쁜 딸이 있고 거친 환경 속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멋진 남자가 있다. 둘은 서로 다른 환경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뒤,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오해를 이겨내고 결국 관계를 인정받는다. 어쩜 이렇게 조금의 예외도 없이 예상했던 대로 일들이 풀려갈까, 신기해하면서도 결국 이 영화에 푹 빠진 건 역시 두 사람이 추는 ‘끈적한’ 춤 때문이었다.

<더티 댄싱>이 앞에서 이야기한 <플래시댄스>와 <풋루즈>와 결정적으로 다른 건 주인공이 추는 춤이 커플 댄스를 전제로 한 맘보, 살사, 탱고 등이라는 것이다. 이 라틴 댄스가 발산하는 특유의 에로틱한 느낌은 영화의 ‘건전한’ 이야기 전개와는 별 관계없이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끈다. 베이비가 아무리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착한 딸이고 쟈니가 아무리 어른에게 예의 바른 착한 청년이라도 두 사람이 섹시한 옷을 입고 몸을 서로 기대는 순간 이들은 즉각적으로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스르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여기에 <더티 댄싱>의 불온함이 짙게 묻어나온다. 나이든 부르주아들의 우아한 여름휴가라는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두 젊은 남녀가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흉측한’ 춤을 추는 것. 이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인 메시지로 남는다. 비록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계층의 사람이 어울리는 한바탕 대화합의 축제로 끝을 내지만 글쎄, 이 시도가 정말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의 섹시한 춤과 매력은 어떻게도 숨길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예외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존 트라볼타 – <토요일 밤의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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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야기 한 세 편의 영화 전에 만들어진 1977년 작 <토요일 밤의 열기>에 대해 짧게 말하고 싶다. 아마 앞으로도 70년대 댄스 영화의 전설로 남을 것이 분명한 이 작품은 <플래시댄스>, <풋루즈>, <더티 댄싱>의 출현을 미리 예고한 문제적 작품이었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한 토미 마네로는 스타일을 주도하는 타고난 춤꾼이었으며, 기성세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적 인물이었으며, 청년과 하층민의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이었으며, 그 자체로 불온한 기운을 품은 시대 최고의 섹시 아이콘이었다. 

이 작품이 앞의 다른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시대의 어두움을 묘사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리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어둡기 그지없는 분위기와 이야기를 갖고 있다. 가난한 청춘들에게 미래는 없으며, 기성세대와 주류 사회는 부서지지 않는 벽처럼 우뚝 서있다. 그리고 토니를 비롯한 인물들은 사회에 섞여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냥 쓸쓸하게 부서져간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의 광기 어린 춤은 억압된 사회 속에서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열기를 분출할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이들에게 춤은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끈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앞의 세 영화들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들 역시 열정적인 춤의 흥겨움 속에 좌절과 분노, 우울을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번 침프 클래식 섹션에서 춤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던 청춘들의 뒤틀린 욕망을 직접 스크린으로 만나보길 권한다. 

CREDIT

.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