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그 사이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특별 섹션 ‘그들 각자의 뮤지컬’

충무로는 한국 영화를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충무로를 중심으로 굴지의 개봉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영화제작사와 기획사가 모였고 영화 포스터와 홍보물을 제작하는 인쇄소와 배우 지망생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도 번성하여, 지금의 충무로 거리 풍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제작사가 강남으로 자리를 옮기고 멀티플렉스 극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중심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잃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계를 말할 때 ‘충무로 동향’이라는 말을 쓰듯 충무로는 켜켜이 쌓인 추억과 낭만적 기억이 스며들어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메인 포스터

뮤지컬전문극장으로 자리 잡은 충무아트센터의 약진으로 충무로는 영화관 밀집지역이 아닌, 공연예술 인프라를 가진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충무로의 시간성과 공연장이라는 공간성을 함께 품으며,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한 충무로뮤지컬영화제(CHIMFF)는 충무로의 과거와 달라진 현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월 6일 개막을 시작으로 1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등 서울 중구 일대에서 펼쳐진다. 그 중 2018년의 특별 섹션 ‘그들 각자의 뮤지컬(TO EACH HIS OWN MUSICAL)’은 뮤지컬 애호가는 물론, 영화 팬들도 열광할만한 섹션이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만든 뮤지컬영화를 시대와 국적에 관계없이 하나로 모았다. 이 중에는 뮤지컬 장르 영화의 관습에 충실한 작품도 있고, 뮤지컬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아우르며 장르적인 실험을 한 작품도 있다. 

맞잡은 춤과 음악의 연대

우리나라 전통 악극을 말할 때,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뮤지컬 장르는 미국 역사 속에서 뿌리 깊은 문화적 함의를 품고 있다. 미국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뮤지컬영화는 미국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복고적 장르이며, 최근 성공한 미국의 뮤지컬영화들은 어김없이 그런 복고적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커플의 스튜디오 뮤지컬로 불리는 초창기 뮤지컬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다. 60년대 줄리 앤드류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 <매리 포핀스> 등으로 뮤지컬 스타로서의 계보를 이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화니 걸>,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이 공연과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70년대는 컬트 열풍의 주역 <록키 호러 픽쳐쇼>, 올리비아 뉴튼존의 <그리스> 등이 인기를 끌었다. 공연장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영화를 만들어 전 세계로 유통시키며 뮤지컬영화는 장르 영화로서 자리 잡았으나, 80년대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진보된 기술과 자본으로, 영화 못지않은 스펙터클과 볼거리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영화는 주류가 아닌 장르영화의 하나로 특성화되었다. 

<에비타>앨런 파커 감독

‘에비타’ 앨런 파커 감독

<그들 각자의 뮤지컬>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앨런 파커의 <에비타>는 뮤지컬영화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과, 영화로 관객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거리를 정확히 짚고 있는 영화다. 1978년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많은 감독들과 영화화 논의가 되었으나 1996년 <핑크 플로이드 더 월>과 <페임>의 앨런 파커 감독이 낙점되었다. 여주인공은 캐스팅 확정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선 마돈나였다. 가창력과 연기력 등이 부족할거라는 부정적 시선이 우세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에바 페론에 투영시키면서 여유롭게 극복했다. 불우한 가정사를 딛고 밑바닥에서 성공의 야망을 불태운 에바 페론과 마돈나의 성공담이 묘하게 겹친다. 

‘빅터 빅토리아’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1982년작 <빅터 빅토리아>는 성별이 바뀐 주인공을 통해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젠더 코미디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브로드웨이와 영화계를 사로잡은 줄리 앤드류스가 주인공을 맡았다. 빅토리아는 빅터라는 이름으로 여장 남자 행세를 하며 노래할 기회를 얻는다. 남장여자가 아니라 여장남자인척 하는 여자라는 설정으로 한 번 더 꼬았다. <핑크 팬더> 시리즈로 탐정 코미디의 장르를 만들어낸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이 영화는 80년대 퀴어의 은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줄리 앤드류스가 클럽에서 노래하는 장면에서만 춤과 노래가 등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뮤지컬영화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1995년 영화를 원작으로 뮤지컬이 제작되었다.   

'피니안의 무지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피니안의 무지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1968년 <피니안의 무지개>는 영화사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데뷔작이며 스튜디오 뮤지컬의 전설 프레드 아스테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뮤지컬영화이기 때문이다. 1947년 제작된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코폴라 특유의 연출력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스튜디오 뮤지컬 장르의 관습을 잘 따르는 무난한 작품이다. 무겁고 철학적인 사유로 이어지는 코폴라 감독의 영화세계를 아는 관객들에게는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가족 뮤지컬이라 더욱 흥미롭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노만 주이슨 감독

‘지붕 위의 바이올린’ 노만 주이슨 감독

1971년 노만 주이슨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초연된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혁명전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원작의 결을 잘 살린 대서사극이다. 역사 속 민중의 삶을 다룬 <레미제라블>의 선배 작품이라 할만하다. <신의 아그네스>, <문스트럭> 등 인간의 고뇌와 신앙의 고민 등 미국 중산층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읽어내며 아카데미상을 12번이나 받은 노만 주이슨 감독은 자신의 영화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통적인 뮤지컬영화의 관습은 받아들인다. 1973년 동명의 록 뮤지컬을 영화화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통해 연출력을 한 번 더 검증받은 바 있다. 

별에서 왔을 것 같은 영화들

영화계의 D.H. 로렌스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고딕>, <크라임 오브 패션> 등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켄 러셀 감독은 1971년 <보이 프렌드>라는 뮤지컬영화를 연출했다. 

'보이 프렌드' 켄 러셀 감독

‘보이 프렌드’ 켄 러셀 감독

1960년대 팝 컬처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트위기의 뮤지컬영화 데뷔작이다. 팝 아이콘 트위기를 캐스팅한 이유는 영화 속에 충분히 담겨 있다. 7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파격적이고 세련된 의상과 무대는 21세기의 감성에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이는 복고가 현대화되면서 우리가 복고의 감성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60년대 후반, 전 세계를 휩쓸었던 팝 컬처를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켄 러셀 감독의 작품 중,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어둠 속의 댄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어둠 속의 댄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어둠 속의 댄서>는 매 작품마다 극단적인 논쟁을 만들어내는 라스 폰 트리에가 싱어 송 라이터 비요크를 만나 만들어낸 걸작이다. 매 작품 파격적 실험을 해낸 감독은 장르 영화로서의 뮤지컬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뮤지컬의 관습을 이용한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주인공의 환상을 표현하기 위한 뮤지컬 장면은 주인공의 현재와 대비되며 그녀를 더욱 바닥으로 끌어내려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충격적이고 먹먹한 결말은 지금까지도 논쟁적이고 충격적이다. 

'흡혈 식물 대소동' 프랭크 오즈 감독

‘흡혈 식물 대소동’ 프랭크 오즈 감독

컬트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은 프랭크 오즈의 B급 감성 코믹 뮤지컬 <흡혈 식물 대소동(Little shop of horror)>이 반가울 것이다.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만의 SF 공포영화를 록 뮤지컬로 바꿔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일부러 B급 감수성을 담아 만들었지만, 장면의 전환이나 연기, 연출은 세련된 편이다. <라밤바>, <시스터 액트 2>의 마일스 굿맨과 <인어공주>, <알라딘> 등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알란 멘킨의 초창기 음악이 귀를 즐겁게 만든다.

'카타쿠리가의 행복' 미이케 다카시 감독

‘카타쿠리가의 행복’ 미이케 다카시 감독

‘그들 각자의 뮤지컬’ 섹션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품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2001년 작품 <카타쿠리가의 행복>이다. 뮤지컬영화의 전통이 없는 동양에서 뮤지컬영화는 그 이물감 때문에 기괴한 변종을 만들어내는데,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작품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이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1999년 기이한 고어영화 <오디션>으로 일본 보다 앞서 해외영화 팬들 사이에서 컬트로 발굴되면서 재평가된 다카시 감독의 영화세계를 담아, 이 영화 역시 엽기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원작의 이야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클레이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한 파격적인 뮤지컬 시퀀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발칙한 상상력이 거북한 사람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극장에서 보기 힘든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다.

1920년대 미국 사람들은 춤과 노래가 있어서 어려웠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보다 즐겁고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은 현대인에게 뮤지컬영화는 그저 하나의 즐길 거리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이 열리는 순간부터 막이 닫히는 순간까지, 우리네 인생을 그대로 닮은 쇼. 그런 쇼를 보여주는 뮤지컬영화야 말로, 충분히 즐길만한 예술작품이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뮤지컬영화 역시, 춤과 노래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영상에 각인시킨다. 오늘은 뮤지컬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잊기 위해 춤추고, 지우기 위해 노래하자. 그렇게 인생에는 위안의 순간이 필요한 법이다. 

CREDIT

. 최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