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돈키호테〉 : 스페인의 낭만과 열정으로 가득찬 코믹발레의 최고봉
[돈키호테] 1막 2장 바르셀로나 광장-돈키호테, 산초판자, 로렌조ⓒuniversal ballet
[돈키호테] 1막 2장 바르셀로나 광장-돈키호테, 산초판자, 로렌조ⓒuniversal ballet

클래식발레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가녀린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서서 도약하거나 회전하는 것은 혹독하고 오랜 훈련이 만들어낸 결과다.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추구해서인지 클래식발레는 비극이 대부분이다. <백조의 호수> <지젤> <라바야데르> 등을 보라.

<돈키호테>는 클래식발레 가운데 드문 코믹(희극) 발레다. 특히 요정과 공주, 마법 등 판타지를 다룬 다른 클래식발레와 달리 시골 처녀와 총각이 주인공인 인간적인 작품이다. 재밌는 스토리와 다채로운 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아 전막으로 자주 공연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갈라 공연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클래식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1822~1910)가 안무한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드 세르반테스의 동명 소설(원제는 ‘라만차의 시골 귀족 돈키호테’)에 나오는 결혼소동을 소재로 했다. 기사들의 무용담에 빠진 나머지 자신을 진짜 기사라고 믿는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산초판자가 모험을 찾아 떠났다가 만난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원작소설의 주인공인 돈키호테와 산초판자는 발레에선 두 젊은 연인의 사랑을 이어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돈키호테] 1막 2장 바르셀로나 광장-키트리, 바질2ⓒuniversal ballet

[돈키호테] 1막 2장 바르셀로나 광장-키트리, 바질2ⓒuniversal ballet

바르셀로나 광장의 선술집 딸인 키트리는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연인 사이. 하지만 아버지 로렌조는 사랑스런 딸을 부자 귀족 가마슈와 결혼시키고 싶어한다. 이때 돈키호테가 나타나 키트리를 둘시네아 공주로 착각하면서 소란을 피운다. 두 젊은 연인은 숲 속 짚시들의 캠프로 도피하고, 이들을 쫓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공격했다가 정신을 잃는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꿈 속에서 요정들과 함께 있는 둘시네아 공주를 만나 행복해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바질과 키트리는 로렌조 앞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키트리가 둘시네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돈키호테는 로렌조를 협박해 결혼 허가를 받도록 돕는다.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이 열리고, 돈키호테는 산초판자와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이 작품은 1869년 프티파가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의 의뢰를 받아 처음 만들어졌다. 루드비히 밍쿠스의 음악을 가지고 안무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페인 정서가 풍기는 밍쿠스의 음악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성적인 캐릭터와 화려한 춤으로 가득찬 프티파의 안무는 큰 호평을 받았다.

2막 1장 집시의 야영지ⓒuniversal ballet

프랑스 출신인 프티파는 1847년 러시아로 진출했다. 당시 유럽에서 발레가 쇠퇴하면서 프티파를 비롯해 많은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뒤늦게 발레 붐이 분 러시아로 갔다. 러시아 황실은 발레의 본고장인 프랑스 출신 안무가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 마린스키 발레단의 전속 안무가로 고용했다. 프티파는 처음엔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계약을 맺었지만 점차 안무에 손을 대기 시작해 1869년 전속 안무가가 됐다. 그리고 1904년 은퇴할 때까지 안무가로서 클래식발레의 꽃을 피웠다.

클래식발레의 특징은 정교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규칙과 형식미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프티파는 낭만발레 시대에 등장한 파드되(2인무)를 발전시켜 그랑 파드되(큰 2인무라는 뜻으로 남녀 주인공이 추는 고난도의 긴 2인무) 형식을 확립했으며 줄거리와 상관없이 다채로운 춤을 보여주는 디베르티스망을 도입했다. 당시 관객들은 프티파가 완성한 발레 형식을 ‘권위가 있다’는 뜻에서 ‘고전(classic)’발레로 칭했다. 프티파는 6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대표작으로는 <백조의 호수>를 비롯해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 <해적> <레이몬다> <돈키호테> 등이 있다. <지젤> 등 낭만발레를 부활시켜 지금까지 공연되도록 만든 장본인도 프티파다.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만들고 러시아를 세계적인 발레 중심지로 만든 것은 프티파의 공이 절대적이다.

[돈키호테] 2막 2장 돈키호테의 꿈-요정여왕ⓒuniversal ballet

프티파는 볼쇼이 발레단의 <돈키호테>를 수정해 1871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다시 공연했다. 마린스키 발레단 버전은 볼쇼이 발레단 버전에 비해 춤이 훨씬 많아졌다. 특히 돈키호테가 숲 속 집시들의 야영지 근처 풍차를 공격하다가 정신을 잃은 뒤 꿈 속에서 둘시네아 공주와 요정들을 만나는 장면이 새로 추가되면서 키트리 역의 발레리나가 둘시네아 공주까지 1인2역을 하게 됐다. 또 기절한 돈키호테를 도와준 귀족의 저택에서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이 열리는 장면도 이때 처음 추가됐지만 지금은 마을 광장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발레 연구가들은 1862년 <파라오의 딸>부터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프티파가 <돈키호테>에서 비로소 클래식 발레를 완성시켰다고 평가한다. 다채로운 춤의 향연을 뜻하는 ‘디베르티스망’, 흰 튀튀를 입은 군무를 뜻하는 ‘발레 블랑’, 남녀 주역 무용수의 화려한 춤이 이어지는 ‘그랑 파드되’ 등 클래식 발레의 세 요소가 이 작품에서 처음 유기적으로 짜여졌다는 것이다. 즉 키트리와 바질의 친구들이 등장해 집시춤 등 스페인 춤을 추는 바르셀로나 광장 장면에선 디베르티스망이, 요정의 정원 장면에서 발레 블랑이,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 장면에서 그랑 파드되가 나온다. 이후 클래식 발레의 전형은 <라 바야데르>로 이어지며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에서 꽃을 피게 된다.

3막 2장 결혼식-키트리, 바질, 파드되ⓒUniversal Ballet

특히 <돈키호테>의 마지막 부분인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에 나오는 그랑 파드되는 지금까지도 발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명장면이다. 남녀 무용수가 느리게 추는 ‘아다지오’, 경쾌한 남녀 솔로 춤인 ‘바리에이션’ 그리고 남녀 무용수가 번갈아 빠른 템포로 추는 ‘코다’로 구성된 그라 파드되는 남녀 주역 모두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32번의 푸에테(회전)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점프가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러시아 발레계의 권력자인 프티파가 생존해 있는 동안 용감하게도 <돈키호테>의 재안무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 바로 볼쇼이 발레단의 전설로 불리는 안무가 알렉산드르 고르스키(1871~1924)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발레학교 출신인 고르스키는 마린스키 발레단 무용수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사실적인 연기와 배우간의 앙상블을 중시하는 연극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자극을 줬다. 그가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를 박차고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옮긴 것도 이런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3막 2장 결혼식-메르세데스ⓒUniversal Ballet.JPG

정형화되고 보수적인 마린스키 발레단을 벗어나 볼쇼이 발레단에서 자신의 예술 이념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그는 프티파가 안무했던 작품들을 개작했다. 첫 작품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1900년 고르스키가 재안무한 <돈키호테>는 프티파 버전에서 이야기의 진행상 불필요한 장면을 빼고 늘어지는 장면을 압축했다.

무엇보다 그는 철저히 주역 중심인 프티파 버전과 달리 전체 앙상블을 중시했다. 이를 위해 군무까지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도록 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무대미술가 알렉산드르 골로빈 역시 의상과 무대세트에 사실성을 불어넣었다. 서재에서 책을 읽던 돈키호테가 여행을 떠나는 프롤로그가 끝나고 막이 오르면 햇빛 아래 사람들로 가득찬 스페인 바르셀로나 광장이 나오는데, 기존의 발레와 달리 매우 현실적이어서 당시 관객들이 매우 놀랐다고 한다.

[돈키호테] 1막 2장 바르셀로나 광장-에스파다1ⓒuniversal ballet

고르스키의 <돈키호테>는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측에서는 고르스키의 안무가 발레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고, 진보적인 측에서는 발레가 허공에서 땅으로 내려왔다며 환영했다. 원작 안무가인 프티파는 “개작 따위는 필요 없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고르스키 편이었다. 무용수들은 물론 관객들도 고르스키 버전을 더 좋아했다. 결국 1902년 프티파의 안마당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고르스키 버전 <돈키호테>가 공연됐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돈키호테>는 고르스키 개정본을 토대로 재안무된 것이다.

그런데, <돈키호테>가 러시아 이외의 발레단에서 레퍼토리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꽤 늦다. 앞서 1920년대 안나 파블로바와 1940년대 발레 뤼스 드 몬테 카를로가 그랑 파드되 등 일부 장면을 공연한 적 있지만 전막으로는 1962년 영국 램버트 발레단에서 처음으로 공연됐다. 그리고 구 소련에서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가 196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오페라 발레에서 재안무한 버전을 선보인 뒤 전세계 발레단이 앞다퉈 레퍼토리로 삼기 시작했다. 요즘 공연되는 <돈키호테>는 재안무 버전에 따라 내용이나 장면 순서 등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큰 흐름은 프티파-고르스키 버전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1년 국립발레단에서 볼쇼이 발레단 주역무용수 출신으로 트레이너를 역임한 마리나 콘드라체바 재안무로 처음 선보였다. 그런데, 국립발레단은 지역 공연장에서는 해설있는 발레 레퍼토리로 <돈키호테>를 자주 올리지만 서울에선 전막 발레로 그다지 공연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관객들에겐 유니버설 발레단의 <돈키호테>가 훨씬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다.

[돈키호테] 2막 2장 돈키호테의 꿈ⓒuniversal ballet

유니버설 발레단의 <돈키호테>는 프티파-고르스키 버전을 바탕으로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마린스키 발레단 전 예술감독이 재안무한 것이다. 1977년부터 20년간 마린스키 발레단을 이끈 비노그라도프는 1998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을 재안무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클래식발레 레퍼토리가 마린스키 발레단의 스타일인 것은 비노그라도프 덕분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돈키호테>에 대해 영국 저명 무용평론가 데브라 크레인은 더 타임즈에서 “무대 전체가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하나의 보석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편 밍쿠스 음악과 프티파-고르스키 안무를 따르지 않은 <돈키호테>도 있다. 1950년 세르주 리파가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자크 이버트의 음악으로 안무했고, 같은 해 니네트 드 발루아가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로베르토 게르하트의 음악으로 안무했다. 그리고 1965년 뉴욕 시티발레단의 조지 발란신이 니콜라스 나보코프에게 의뢰한 음악으로 새롭게 안무했고, 1979년 함부르크 발레단의 존 노이마이어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이용해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공연되는 것은 거의 없다.

#발레 <돈키호테> 공연정보

CREDIT

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