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젊음의 행진’ 왕경태 役 배우 김지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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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소리가 귓가에 울리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풀 향기처럼 아릿한 추억이 떠오른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편지, 짝사랑의 아픔을 어루만져줬던 노랫말까지 유년시절의 이야기들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게 하는 마법 같은 단어다.

여기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사랑을 연기하는 남자가 있다. 서툴고 어리숙하지만 한 사람만 우직하게 바라보는 남자, 그래서 끝내 사랑을 쟁취하고야 마는 남자. 대표 복고 뮤지컬로 통하는 ‘젊음의 행진’ 속 왕경태를 연기하는 김지철이다.

고등학생 시절 풋풋한 경태와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는 우직한 경태를 오가며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배우 김지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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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3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서 김지철은 왈가닥에 실수투성이인 여주인공 오영심(배우 신보라·김려원)을 짝사랑하는 순정남 왕경태를 연기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일편단심으로 영심이만 바라봤던 경태는 성인이 되어서도 차마 입 밖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그런 경태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속이 타 들어간다. 그런 관객들의 속도 모르고 그는 무대 위에 서 있으면 마냥 행복하다고 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덩달아 신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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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행진’은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한 병의 짜릿한 피로회복제 같은 작품이에요. 관객들이 행복해하니 배우들도 공연 내내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분이 들 정도죠. 관객들 사이에선 젊음의 행진은 커튼콜부터 ‘3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커튼콜에 특히 볼거리가 많으니까요.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희도 덩달아 신이 나서 한바탕 난장을 펼쳐보는 느낌이랄까요. 너무 신이 나서 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담이 결려 병원에 다닌 적도 있어요.(웃음)”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송골매의 ‘모여라’ 윤시내의 ‘공부합시다’ 이상은의 ‘언젠가는’ 등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가요들로 채워진 이 작품은 매끄러운 스토리와 주옥 같은 넘버의 조합으로 2007년 초연 이후 10년 넘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추억을 소환하는 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 실제로 공연 중 객석 곳곳에선 유년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울려 퍼질 때마다 따라 부르며 어깨 춤을 들썩이는 관객들이 쉽게 발견된다.

김지철은 2013년에도 ‘젊음의 행진’ 무대에 섰다. 당시는 교생 선생님 역이었다. 그때부터 나이를좀 더 먹으면 왕경태 역을 맡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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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연진 가운데 제가 막내일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동생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제 안에서 형다운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니까 ‘아 이제 경태 역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든 경태의 듬직한 모습을 제 안에서 발견했달까요. 하하“

한때 가수를 꿈꿨던 김지철에게 ‘젊음의 행진’ 속 주옥 같은 넘버들은 유년시절을 채웠던 BGM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고향인 울산 지역 방송국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진행한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해 5연승을 거둘 정도로 울산 지역에선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버지 말씀이 서울로 가서 가수의 꿈을 펼쳐보라는 거예요. 근데 그 당시 저는 참 어렸어요. 막상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갈 엄두가 안 나더군요. 결국 그렇게 가수의 꿈을 접었어요.”

물론 재주꾼 김지철에겐 곧 새로운 꿈이 생겼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 ‘네 멋대로 해라’의 양동근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는 뮤지컬 배우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 특유의 성실함은 군 제대 이후 빛을 발했다.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기량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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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는 뮤지컬 ‘영웅’의 브로드웨이 공연이었다. 2011년 앙상블로 경력을 시작했던 그는 이듬해 ‘영웅’ 국내 공연에서 배역(유동하 역)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김지철은 굵직한 중소극장 작품에서 빛을 냈다. ‘광염소나타’ ‘톡톡’ ‘위대한 캣츠비’ ‘리틀잭’ ‘판’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처음으로 대극장 뮤지컬 주역을 맡게 된 것이다.

“무대의 규모나 배역의 중요도와 상관 없이 저에겐 하나같이 소중한 무대죠. 저처럼 앙상블로 시작해 주연으로 성장하는 것 만이 좋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유일한 답은 아니겠죠. 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성장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한 길을 제가 한 걸음씩 꾸준히 걸어왔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해요.”

공연의 막이 내리는 5월 27일까지 모두의 추억 속 아련한 첫사랑으로 무대에 오를 그에게 끝으로 ‘젊음의 행진’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물었다.

“준비하실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지친 하루의 끝을 저희가 책임집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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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젊음의 행진> 공연정보

CREDIT

인터뷰어. 서은영
서울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