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자극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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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브로드웨이와 국내를 막론하고 뮤지컬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1999년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은 공연이 올라가기도 전에 무려 1천300만 달러나 사전 판매됐다. 당시까지 웨스트엔드 사전 판매액 중 최고 금액이었다. 이러한 열풍은 캐나다나 호주 등 영어권 공연에서도 이어졌다. <맘마미아!>가 흥행에 성공한 후 퀸의 노래로 만든 <위 윌 록 유>(2002), 빌리 조엘의 <무빙아웃>(2002),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 슉 업>(2005), 프랭크 밸리와 포 시즌스의 <저지 보이스>(2006) 이외에도 밥 딜런, 마이클 잭슨, 프랭크 시나트라, 캐롤 킹 등 브로드웨이에서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한 해에 한두 작품씩은 등장했다.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맘마미아!>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열풍을 이끌며 브로드웨이에 두드러진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기존 노래로 만드는 뮤지컬이 새로운 양식은 아니었다. 1950년대 작품인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는 여러 곡을 작품의 프로듀서이자 작사가인 아서 프리드가 작사한 히트곡을 차용했다. 작품명과 같은 ‘Singing in the Rain’은 1929년에 이미 발표된 곡이고, ‘You Are My Lucky Star’ 역시 <브로드웨이 멜로디>에 수록된 곡이었다. 최근에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러브 네버 다이즈>에서 그의 또 다른 작품 <뷰티풀 게임>의 ‘The Heart IS Slow to Learn’을 ‘Lover Never Dies’로 곡명을 바꿔 사용하기도 했다. 새로 만드는 뮤지컬에 기성 노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낯설지만 이러한 방식은 꽤나 오래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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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등장한 <걸 크레이지>는 조지 거쉰과 아이라 거쉰 형제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1970년대에는 이런 레뷔 작품들이 종종 선보였다. <방황하지 않아요>는 팻츠 월러의 곡을 <세련된 숙녀들>에서는 듀크 엘링턴의 노래를 사용했다. 역사적으로 기존 곡을 차용한 기록을 살펴보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컬 장르를 태동시킨 작품으로 꼽히는 1728년작인 존 게이 <거지 오페라>는 귀족 문화를 풍자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 곡을 차용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기 있는 쇼 형식이었던 벌레스크에서는 새로운 곡을 작곡하기보다 기성 유행하는 곡들을 그대로 사용해 대중적으로 접근했다.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중극이었던 악극에서도 기존의 대중노래나 외국의 번안 곡들을 극 중에 넣어 사용했다. 이처럼 과거 음악극에서는 지금의 주크박스 형태의 작품들이 종종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왜 기성곡을 사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인기를 끄는 것일까. 그것은 대중성이 검증된 노래일 뿐만 아니라 이 노래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수나 작곡가의 노래로 만드는 트리뷰트(Tribute) 뮤지컬과 다양한 노래를 묶어 만든 컴필레이션(Compilation) 뮤지컬이 그것이다.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엮은 <올 슉 업>, 그리고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연가>는 대표적인 트리뷰트 뮤지컬이다. 반면 1950~60년대 올드 팝으로 엮은 <금지된 행성으로의 귀환(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이나 1980년대 글램 록의 대표곡을 사용한 <록 오브 에이지>는 대표적인 컴필레이션 작품이다. 트리뷰트 뮤지컬이든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든 주크박스 뮤지컬은 추억이 담긴 노래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곡들은 그 노래를 듣고 즐겼던 당시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국내 뮤지컬계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은 최신 트렌드이다. 2004년 1970~80년대 인기가요로 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포문을 연 후 <달고나>, <진짜진짜 좋아해>, <그날들> 등 수많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특정 가수의 노래로 만든 트리뷰트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국내에서는 컴필레이션 스타일의 주크박스 뮤지컬의 비중이 트리뷰트 뮤지컬과 대등하게 제작되었다. 한 아티스트의 팬덤이나 향수에 기대는 작품 못지않게 특정 시대의 정서에 호출하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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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연한 <젊음의 행진>은 국내 주크박스 뮤지컬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1980년대 유행했던 동명의 인기가요 프로그램과 인기 만화 <영심이>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가요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은 1980년대 시작해 1990년대 초반까지 장수한 인기 방송으로 지금의 <뮤직뱅크>나 <쇼 음악중심> 이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유투브나 인터넷, 또는 뮤직 비디오 등 좋아하는 가수를 만날 수 있는 채널이 많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콘서트나 방송국에 가지 않는 한 TV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인기가수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시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젊음의 행진’을 보며 송골매, 소방차, 신신, 김완선, 이선희, 신승훈, 김건모 등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다.

배금택의 만화 <영심이>는 가요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과 비슷한 시기에 소년만화잡지에 연재된 만화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열네살 소녀 영심이의 심리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담아낸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었다. 영심이를 좋아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왕경태가 등장하는데, 영심이는 그런 경태를 구박하다가도 그가 다른 여자애에게 관심을 보이면 질투하곤 했다. 뮤지컬은 공연 기획자가 된 35살의 오영심이 콘서트 ‘젊음의 행진’을 준비하던 중 경태를 다시 만나면서 그 시절을 떠올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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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1990년대 초반 <젊음의 행진>을 본방사수하고(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서 제일 먼저 <영심이>를 찾아보았던 그 시대의 청소년층에게는 특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신승훈의 ‘보이지 않은 사랑’,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는 TV나 만화를 즐기지 않았던 이들이라도 그 시대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시대적 정서가 되살아날 것이다. 이처럼 주크박스 뮤지컬은 추억의 소환을 통환 향수를 자극한다. 이 작품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사춘기 소녀 영심이의 성장 과정과 순수했던 첫사랑에 대한 로맨스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감성으로 어필한다. 지금과는 낯설지만 왠지 익숙한 정서가 묘한 매력을 준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 공연안내

CREDIT

글. 박병성

칼럼니스트,
무대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와 그 속의 진정성을 좋아함.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을 할지를 더 고민하며 살고 싶었는데 그냥 할 수 있는 걸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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