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력파, 부족하니 끊임없이 쓸 수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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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공연계에선 ‘언제나 오세혁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오세혁(37)이 연출, 극작, 각색, 윤색 등으로 참여한 연극과 뮤지컬이 초연 또는 재연으로 쉼없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일이 세지 않았지만 대략 30여개나 된다. 올해 1~2월만 보더라도 <톡톡>(재연 각색), <한여름밤의 꿈>(초연 각색), <지상 최후의 농담>(재연 극작), <블라인드>(초연 작‧연출) 등 연극 4편과 <모래시계>(초연 공동극작), <홀연했던 사나이>(초연 극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초연 연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재연 연출) 등 뮤지컬 4편이 공연됐거나 공연중, 혹은 개막을 앞두고 있다.

공연계에서 오세혁 다음으로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연출가 김태형이다. 연출 외에 극작과 각색을 병행하는 오세혁만큼 많지 않지만 김태형도 지난해에만 이름을 올린 작품이 10편을 넘어섰다. 김태형은 특히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등 관객참여형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를 국내에 유행시켰다.

2월 6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한국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두 사나이’ 오세혁과 김태형의 첫 만남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다. 이 작품의 원작은 2011년 초연된 연극 <홀연했던 사나이>(오세혁 작, 유수미)으로 오세혁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던 오세혁이 김태형과 손잡고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명동예술극장 주관의 창작산실 지원사업(지금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에 도전했던 추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시범공연에는 뽑혔지만 최종 본공연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연극에만 몰두하던 오세혁은 2016년 연출을 맡았던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흥행으로 뮤지컬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번에 오세혁이 김태형과 다시 손잡고 준비한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그에겐 옷장 깊숙이 간직해 왔던 ‘추억의 보물상자’를 여는 작업일 것 같다. 오세혁에게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를 포함해 최근 여러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와 고민을 들어봤다.

“제작사로부터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연출은 (김)태형 형님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태형 형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기꺼이 연출을 맡아주셨고요. 2013년 처음 이 작품을 만들 때 창작팀이 이번에 다시 함께 하게 돼서 기뻐요.”

동명 연극이 원작인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시골 다방을 배경으로 일상에 갇힌 동네 사람들이 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난 남자를 통해 잊고 있던 꿈을 다시 한번 꾸게 된다는 이야기다. 남자를 시나리오 작가로 생각한 사람들은 우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시나리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사나이와 함께 작업에 나선다.

그런데,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를 이해하려면 전국을 돌며 노동극과 마당극을 선보이던 오세혁이 신춘문예를 통해 제도 연극권에 들어오던 시기부터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2005년 배우 겸 작가 최현미 등 한양대 안산캠퍼스 풍물패 동문들과 극단 걸판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그는 2011년 초 부산일보와 서울신문의 신춘문 희곡 부문에 <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률>과 <아빠의 소꿉놀이>가 동시에 당선되며 주류 연극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 해 5월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2011 신춘문예단만극전’에 소개된 그의 두 당선작은 8월 게릴라극장에서 재공연되는 드문 기록을 세웠다. 이어 11월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선 신작 <홀연했던 사나이>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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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소재와 유려한 대사, 따뜻한 웃음을 앞세운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가 연극계의 총아로 떠오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개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그 해 8월 이윤택이 이끄는 밀양연극제는 그가 기륭전자 파업을 모티브로 쓰고 연출한 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옥장>에 대상과 연출상을 안겨줬다.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이 이듬해 7월 게릴라극장 무대에 오르자 많은 공연계 관계자들이 보러왔다. 혜성처럼 떠오른 신인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범생들> <오월엔 결혼할 거야> <옥탑방 고양이> <연애시대> 등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연출가 김태형도 포함돼 있었다.

“태형 형님이 <그와 그녀의 옷장>을 본 뒤 제게 인사하려고 기다리시더라구요. 후배인 제가 먼저 인사드려야 되는데, 형님이 먼저 ‘정말 잘 봤다’며 칭찬해 주셨어요. 그리고 얼마 뒤 형님이 SNS 등에 <그와 그녀의 옷장>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리거나 지인들을 공연에 보내셨어요. 감사할 따름이었죠. 이후 종종 만나며 친해진 뒤 ‘언젠가 작품으로 모이자’고 약속했습니다.”

오세혁은 뒤늦게 입학한 서울예대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의 수업을 들으며 뮤지컬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조광화의 수업에는 작곡을 전공하는 동기 다미로(본명 김용순)도 있었다. 오세혁과 다미로는 서울예대 졸업 후 함께 뮤지컬을 만들기로 약속했고, 연극 <홀연했던 사나이>를 뮤지컬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작사가 이오진, 연출가 김태형도 여기에 합류했다.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에 지원했던 <홀연했던 사나이>는 시범공연에 뽑혔지만 최종 본공연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떨어졌지만 언젠가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를 보완해서 다시 공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4년여만에 창작자들이 모여 다시 작업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뻐요. 다만 이오진의 경우 다른 작업 때문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가사가 남아 있으니까요. 이번에 다시 작업하면서 태형 형님이 감각적이고 진보적인 연출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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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했던 사나이>가 창작산실에서 떨어진 후 오세혁은 연극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2015년 그가 시인 백석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우란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재단에서 지원하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2016년 초 트라이아웃 공연 때부터 높은 주목을 받은데 이어 그 해 가을 본공연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는 뮤지컬계에서 <라흐마니노프> 연출과 <밀사> <모래시계> 대본 등의 작업을 했다.

“10년 넘게 작업해온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이제 2년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부분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다만 뮤지컬 작업을 하면서 음악의 힘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연극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이야기와 감정을 뮤지컬에선 넘버 1곡에 담을 수 있으니까요. 뮤지컬의 경우 연극보다 좀더 다양한 스태프들과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극보다 같이 만들어가는 어려움이 크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크다고 봅니다.”

오세혁은 비상업적인 극단과 상업적인 프로덕션 모두 선호하는 드문 케이스다. 연출, 극작, 각색, 윤색 등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데다 작업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긍정적이고 유연한 그는 프로덕션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갈등을 최소화 한다. 무엇보다 그는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덕분에 소속극단 걸판을 비롯해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극단 연희단거리패, 극단 파수꾼, 서울시극단, 국립극단, 서울시뮤지컬단 등 극단들부터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수현재 컴퍼니, 연극열전, hj컬처 등 제작사까지 그가 손잡고 활동해온 무대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상업적인 프로덕션과 극단 작업 모두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극단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구성원들과 작업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와 관련한 합의가 빠릅니다. 그리고 극단의 역량이 하나로 뭉쳐져서 작품에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 프로덕션의 경우 아무래도 시스템이 좋고 예산 면에서 여유가 있죠. 역량있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업 과정은 느리고 힘들지만 무대를 빛내는 배우 각각의 힘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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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공연계에서 이제껏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다작을 하다 보니 종종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주류 공연계에 들어온 직후 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작품을 할 때의 칭찬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아마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저에 대한 비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언제는 평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 경우 마당극과 노동극부터 출발하는 등 극단 마인드가 커서 작업 속도가 빠릅니다. 우선 거칠더라도 작품을 내놓고 2~3번 다시 고치는 스타일입니다. 제 멘토이신 이윤택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예술가는 천재와 노력파로 나뉜다고 해요. 사무엘 베케트처럼 <고도를 기다리며> 1편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루이지 피란델로처럼 수백편을 쓴 끝에 <작가를 찾는 6명의 등장인물> 같은 걸작이 나오는 노력파가 있다고요. 저는 노력파라고 생각해요. 부족하더라도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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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역시 충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작업이 많아지면서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을 그만둔 그는 이제 각색과 윤색 작업도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롯히 작품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극작과 연출에 몰두할 계획이다.

“연출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작업하는 즐거움이 있고, 극작은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쁨이 있어요. 재작년까지는 연출이 그저 즐거웠지만 요즘엔 다시 극작으로 기울었어요. 극작이야말로 제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작업이니까요. 아무래도 연출가로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작업하는 동안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아요. 이제 저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작품 제안도 최소한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늘 꿈꾸던 쿠바 여행도 조만간 갈 생각입니다.”

아티스트로서 힘든 길을 오랫동안 걸어가기 위해 오세혁은 지금 속도를 줄이며 심호흡 하고 있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공연정보

CREDIT

인터뷰어.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