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 역을 통해 때론 본질로 돌아갑니다. ‘악역’에게도 존재했을 순수한 인간본성 말이에요 – 뮤지컬 〈모래시계〉 배우 박성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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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드라마 <모래시계>가 뮤지컬로 돌아왔다.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가 1995년 선보인 드라마 <모래시계>는 1970~9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안타깝게 얽혀버린 세 주인공의 운명과 선택,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폭력조직 중간 보스 출신 카지노 사업가 태수 역의 최민식, 태수의 연인이자 카지노 대부의 딸인 혜린 역의 고현정, 태수의 친구로 굳은 신념을 가진 검사 우석 역의 박상원 등 세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의 명연기가 어울어져 드라마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64.5%, 24부 평균 시청률 50.8%를 기록했다. 당시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일찍 집에 들어갔기 때문에 ‘귀가시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작품의 뮤지컬화는 그래서 기대보다 우려를 많이 모았다. 방대한 원작을 3시간 정도로 압축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이 오른 뒤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스피디한 전개 속에 클래식과 록을 넘나드는 음악이 원작의 아우라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뮤지컬만의 매력을 살렸다는 평가가 많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조광화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 주인공의 서사를 끌고 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 주인공의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는 조역들의 이야기가 조밀하게 엮여 있다. 특히 흥미로운 캐릭터는 태수의 친구였지만 혜린을 제거하려다 태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조폭 종도다. 종도는 태수와 대립하며 극의 긴장을 극대화시키는가 하면 비열하고 능청스런 모습으로 극을 이완시키기도 한다. 뮤지컬 <모래시계>에서 종도 역을 맡은 박성환은 얄미울 정도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종도 역을 위해 영화 <달콤한 인생>에 출연했던 황정민처럼 앞 머리카락을 M자로 잘랐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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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뮤지컬 <아이다>의 조세르나 <명성황후>의 미우라처럼 묵직한 스타일이고요. 다른 하나는 <모래시계>의 종도처럼 비열한 스타일입니다. 원작 드라마에서도 종도는 간사한 캐릭터지만 뮤지컬에서는 좀 더 그런 모습이 두드러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이 3시간 가까이 어두운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종도가 극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쇼스토퍼(showstopper)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박성환은 주인공들의 고교시절이 등장하는 초반엔 순박함이 조금은 남아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점점 탐욕에 물든 그는 보스에게 내쳐진 뒤 보스와 태수에게 거짓누명을 씌워 각각 감옥과 삼청교육대로 보낸다. 이후 태수가 다시 나타나 카지노 사업을 하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사업을 뺏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혜린의 아버지를 죽이고 태수에게 또다시 누명을 씌워 감옥을 가게 만든다. 그리고 혜린을 제거하려다 탈옥한 태수에게 죽음을 맞게 된다.

“종도는 죽는 모습조차 진지하지 않아요. 칼에 맞은 뒤에도 허세를 부리며 걸어가 의자에 앉아 죽는 게 블랙코미디죠. 아마도 종도는 죽기 직전에야 학창시절 이후의 삶을 떠올리며 조금은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악역 종도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주는 박성환은 최근 뮤지컬계에서 악역으로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모래시계>에 앞서 했던 역할이 <아이다>의 조세르, <모래시계> 다음으로 예정된 역할이 <명성황후>의 미우라다.

“돌이켜보면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악역을 많이 맡았던 것 같아요. 데뷔한지 얼마 안됐을 때 뮤지컬 <밑바닥에서> 가운데 아내를 때리는 귀족 역할이었어요. 사실 제가 뮤지컬 <찬스> <파이브 코스 오브 러브> 등에서 코믹한 역할도 많이 맡았는데요. 악역으로 나왔던 작품이 관객에게 많이 사랑받다보니 악역의 이미지가 강해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코믹한 역할을 비롯해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뮤지컬만이 아니라 연극으로도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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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는 박성환은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고(故) 백성희 선생이 출연한 연극 <혼자사는 세여자>를 처음 본 후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주임을 맡을 정도로 엄격했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다행히 어머니가 몰래 연기학원을 보내준 덕분에 대학 연극영화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직후였던 2004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앙상블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지킬앤하이드>의 앙상블을 한 것이 노래 공부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학 연영과에선 따로 보컬 트레이닝 수업이 없었는데요. <지킬앤하이드>에 출연했을 때 성악과 출신 배우들의 발성과 호흡법을 관찰하면서 두성, 흉성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노래에 자신감이 붙게 됐어요.”

이듬해 그는 대학로에서 배우사관학교로 통하던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디션에 합격했다. 김윤석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등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극단 학전은 당시 수많은 배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오디션에서 붙었는데요. 인터넷에 뜬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확인한 뒤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나요. 이후 <지하철 1호선>에서 거지와 교수 등의 멀티역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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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2006년 뮤지컬 <밑바닥에서>에서 아내 때리는 귀족과 2007년 뮤지컬 <렌트>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을 쫓으려는 건물주 베니를 시작으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브 코스 오브 러브> <잭더리퍼> <어쌔신> <보이첵> 등에서 감초같은 역할로 출연하며 차근차근 경험을 축적했다.

“배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무조건 발전해야 합니다. 한 단계가 안되면 반 단계라도 올라가야지, 정체되면 안돼요. 예술가는 새로운 변화나 시대의 흐름에 예민해야 한다고 봐요. 둔감하게 살 거면 굳이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가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꼽는 것이 ‘오디션’이다. 물론 그동안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다른 배우들의 모습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도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는 화나죠. 특히 최종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정말 속상합니다. 하지만 오디션을 볼 때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게 느껴져서 재밌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디션을 많이 보려고 노력합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재능이 중요하지만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디션의 경우 배역에 맞게 치밀하게 준비할수록 합격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리고 철저한 준비과정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을 때는 기쁨도 그만큼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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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이후 꾸준히 노력하며 성장해 왔지만 그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2015년 주인공인 오베론 역을 맡아 3개월간 연습했던 창작뮤지컬 <한여름밤의 꿈>이 공연장 문제로 개막 직전 취소됐을 때다. 당시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것에 기뻐서 다른 대작 뮤지컬의 조연을 거절했던 그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후 다른 뮤지컬의 오디션까지 한동안 없어서 그는 거의 1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러다가 2016년 수원시립예술단에 들어간 그는 뮤지컬 <정조>의 타이틀롤을 맡기도 했다. 수원시립예술단 단원은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했지만 그는 불안정하더라도 자유로운 도전을 위해 오래지않아 퇴단했다.

“막상 퇴단했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공연 기회가 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배우를 그만두고 경찰관 채용시험을 보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예전에 의경으로 복무할 때 꽤 잘 했었거든요. 마침 뮤지컬 <아이다> 오디션 공고가 떴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응하게 됐어요. 당시 제가 절실했던데다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인지 조세르 역에 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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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라다메스의 야심많은 아버지 조세르 역을 맡았던 역대 배우들 가운데 가장 젊다. 당시 라다메스 역의 김우형과는 겨우 3살 차이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그의 연기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아이다>와 함께 한동안 정체됐던 그의 배우 경력도 다시 활력을 띄게 됐다. <모래시계>의 종도 역에 이어 2017년 3월 개막하는 <명성황후>의 미우라 역에 캐스팅 된 것이다.

“<한여름밤의 꿈>의 취소로 슬럼프를 겪은 덕분에 작품 선택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명성황후>에 캐스팅되면서 평소 성실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2014년 <보이첵> 출연 때 윤호진 선생님 등 에이콤에서 저를 좋게 보신 덕분에 제안이 왔다고 생각해요. 당시 공연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을 치른 뒤 슬픔을 억누르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아버지는 제가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저를 응원해 주셨어요. 심지어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병원에 간 제게 빨리 연습하러 가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에요. 제가 이렇게 배우로서 다시 활약하게 된 것도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가 도와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뮤지컬 모래시계 공연정보

CREDIT

인터뷰어.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