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퇴근길

‘주말을 몇 시간 앞둔 금요일 오후 퇴근시간쯤. 업무를 마감하는 그녀의 타자소리가 바쁘다. 혹시 예상치 못한 회식이 갑작스럽게 잡힐까 초조하지만 방어할 핑계거리쯤은 얼마든지 생각해두었다. 바쁘게 지내온 한 주가 마감되고 드디어 기다리던 퇴근시간.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연인과의 데이트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데이트 못지않은 설렘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공연예술의 주요 관객층은 ’20~30대 여성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 시장에서 여성 관객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녀들에게 공연을 ‘본다’는 것은 특정 작품을 관람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공연을 선택하고, 그것을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 문 밖을 나선 후 까지도 문화 향유의 과정은 계속된다. 여가시간을 문화예술을 소비하며 보내는 그녀들은 어떤 이유로 공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입소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예매평과 후기 남기기 등의 활동을 통해 공연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공연 시장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그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그녀는 왜 보는가

여성들은 왜 공연을 볼까. 그것도 남성들보다 더.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공연장에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공연장 로비에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줄어드는 동시에 연령층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연극, 뮤지컬 공연에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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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뮤지컬 <팬텀>, <쿠거>, <빈센트 반 고흐>

국내 최대 티켓판매 사이트 ‘인터파크 티켓’이 제공하는 예매자 비율에서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 7월까지 충무아트홀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었던 뮤지컬 <팬텀>, <쿠거>, <빈센트 반 고흐>는 공연 모두 여성 예매자 비율이 80%를 넘었다. 예매자와 실제 관람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외에도 문화소비 전반에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통계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그’보다 ‘그녀’들을 공연장에서 더욱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바로 공연을 보는 그녀들 속에 말이다. 남성에 비해 대체로 감성적이라고 알려진 여성들은 공연장에서 보이고, 들리는 온갖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섬세한 감정을 가진 여성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얻는 슬픔과 기쁨에 쉽게 동화되고, 그 곳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크게 동요한다. 웃음과 눈물을 쏟으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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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뮤지컬 <팬텀>, <쿠거>,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감정과 순간의 예술’인 공연에서 여성들은 누구보다 예리하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연결고리를 캐치한다. 이러한 그녀들을 유혹하는 공연의 매력적인 모습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스토리가 가진 감동은 물론이고 화려하거나 또는 사실적으로 그려진 무대와 의상, 완벽한 음악의 조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까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들 내면에 감추고 있는 감정을 흔든다는 것, 이것이 여성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당기는 공연의 매력이다.

 

그녀는 무엇을 남기는가

공연에 대한 그녀들의 본격적인 수다는 공연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포토존과 대형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고, 그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공연 ‘리뷰어’들도 상당수 포진해있다. 성향에 따라 후기를 남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지만 공연의 감상을 생생하게 남기기 위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점은 모두 같다. 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곳에 감상평을 묻어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관람한 공연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하며, 모두가 보는 곳에 공연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며 스스로 공연 홍보의 일등공신 자리에 오르는 관객들도 있다. SNS와 같은 개인 채널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요즘은 공연 후기를 남길 수 있는 매체 선택의 폭이 넓고, 이는 또 다른 관객들을 유입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공연 후기를 남기는 여성 관객들 중 가장 베일에 싸인 부류는 혼자만의 흔적남기기로 끝나는 ‘자기만족형’ 리뷰어들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비공개 계정이나 스마트 폰 속 노트를 주로 이용하는 그들은 다른 이들과의 공유보다는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를 원한다. 공연관람에 취미를 두기 시작한 이후부터 개인적인 노트에 공연감상을 모으고 있다는 직장인 K양은 “공개되지 않은 곳에 감상을 남기는 것은 아주 상세하고,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공연의 느낌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며 혼자만의 후기 모음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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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적극 활용하는 관객들도 있다. 평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활발히 소통하는 이들은 공연에서 느낀 감정들도 공유하려고 한다.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들과 짧은 감상평을 남긴 후기는 그녀들의 SNS를 타고 주변인들에게 공유되고, 같은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에게까지 널리 퍼져나간다. 연극, 뮤지컬을 가리지 않고 한 달에 2~3번은 공연 관람을 하는 J양은 SNS를 통해 활발한 공연 리뷰어활동을 하고 있다. “SNS는 가볍게, 때론 재미있게 공연에 대한 느낌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같은 공연을 본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후기를 봐주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맘에 드는 공연 추천도 해줄 수 있다.”

SNS가 감정을 공유하고, 짧고 재미있는 공연 후기를 남길 수 있다면, 블로그는 공연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로그를 통해 공연 감상 후기를 남기는 그녀들은 감상 뿐 아니라 공연장 정보와 주변 맛집 등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모두 풀어낸다. 공연에 관련된 정보 전달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는 블로그는 여러 관객들 사이에서 소통의 장으로 통한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지 않더라도 그녀들이 남긴 공연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공연 수다가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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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성 관객들의 공연 관람은 공연을 중심에 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고, 남기고 또 다시 공연장으로 향하는 그녀들의 발걸음은 감성을 자극하는 감동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한 계속될 것이다.

CREDIT

글. 채소라
MUST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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